◈'아들문제'에 떠밀린 결정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은 민주당이 노무현 후보-한화갑 대표의 새 체제를 갖추면서부터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다만 D-데이를 놓고 월드컵 이전이냐 아니면 아들들의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내용이 발표된 이후이냐를 놓고 저울질 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내에서는 노무현 후보측을 중심으로 '월드컵 이전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 반면 청와대에서는 아들들의 비리를 스스로 인정하고 김 대통령의 통치력을 급속히 약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들어 조기 탈당은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청와대가 이처럼 조기 탈당 불가론을 견지한데는 김 대통령이 아들 문제를 포함, 작금의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 이렇다할 언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김 대통령의 탈당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부인해 왔으며 아들 문제에 대해서도 지난달 26일 박선숙 대변인의 간접 사과이외에 특별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던 김 대통령이 조기 탈당으로 급선회한 것은 탈당 시기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는 노무현 후보쪽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노 후보가 한 때 이회창 후보에 30% 이상 앞서 나갔던 지지율 격차가 최근들어 10%선으로 줄어들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 '3홍 게이트'를 꼽고 있다. 이에 따라 노 후보쪽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지방선거는 물론 대선도 장담할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이 조기 탈당을 결심하게 된 데는 이같은 외압 이외에 아들 문제로 인한 도덕적 권위의 실추와 이에 따른 국정 장악력 상실의 방지를 위해서는 국면전환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김 대통령이 아들들의 비리에 대한 검찰수사 내용이 나온 뒤 탈당의 결단을 할 경우 그 때는 약효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국민사과 이후 '식물 대통령'이 됐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대통령의 조기 탈당은 노 후보쪽의 희망이 반영된 비자발적인 측면과 국정 장악력의 유지를 위해 '정치적 무장해제'를 스스로 선택한 측면도 함께 갖추고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그늘을 부담스러워 하는 노후보측의 종용이 더 큰 작용을 한 것이란 인상은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김 대통령의 탈당이 어떠한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서 김 대통령의 공과를 지고 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김 대통령의 조기 탈당이 노 후보의 지지율 재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또 아들 문제로 김 대통령의 권위는 이미 실추될 대로 실추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에 상처를 받는 일 없이 임기말을 잘 넘길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경훈기자 jgh03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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