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된 풀타임 직업은?" 흔한 답은 "매춘"이다. 두 번째 퀴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파트타임 직업은?"이 질문에는 답할 사람이 적을 것 같다. 답은 "뇌물수수"다. 그 정도로 뇌물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영국의 사뮤엘 페피스(Samuel Pepys.1633~1703)는 미천한 집안 출생이었으나 해군성 관리로 들어가 나중에는 장관까지 올라갔던 사람이다.이 사람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125만 단어에 달하는 일기인데, 영국에서 '성경'에 버금가는 장기 베스트 셀러라고 한다. 그는 일기에서 매일의 생활을 상세히 기록해두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자기가 받은 뇌물 액수와 전후 사정까지 적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수시로 자기 재산을 조사해본 뒤 "현재 나는 951파운드의 재산을 갖고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쓰고 있다. 이 사람은 쉴새 없이 현금과 선물을 받아 챙기고, 그 보답으로 무언가 도와줄 길을 모색하면서도, 자신이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양심의 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점은 요즘 각종 부정 사건에 연루된 높으신 분들과 공통점이 있다.
페피스보다 300년 전 조선초기의 황희는 18년이나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 청백리로 알려져 있다. 비올 때 지붕이 새서 방 안에서 우산을받고 있었다는 신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런데 실은 황희도 많은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었고, 경기도에 넓은 땅을 가진 재산가였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흠이 많은 황희가 우리 역사상 깨끗한 인물로 존경받게 된 이유는 당시 관리들이 하도 토색질이 심하고, 부패가 만연하다 보니 관리들 중에서 비교적 덜 썩은 황희를 우상화, 신격화한 결과라고 한다.
요즘은 신문을 읽어도 정말 혼란스럽다. 전에는 대형 부정사건이 한 건씩 터지니 신문을 읽으면 그런 대로 줄거리가 이해되었으나 최근의 스캔들은 하도 대형사건이 많고, 등장인물도 많아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 아들, 세계화 브로커, 여권 실세, 국회의원, 시장, 부시장이 등장하는가 하면 검찰, 경찰간부까지 등장하니 누가 도둑이고, 누가 곳간지기인지, 누가 어느 사건의 등장인물인지, 또 누가 주인공이고 조연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부정부패 계통도 같은 그림이라도 나와서 이해를 도와주면 좋겠다.
이처럼 부패가 늘어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왜냐하면 현 정부가 애당초 내세운 국정 기본방침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인데,이 두 가지는 부패와는 상극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어디고 부패가 없는 나라는 없지만 그래도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일수록 비교적 부패가 적은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공무원 노조도 부패 방지라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시장경제의 발전 역시 부패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정부가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민간에 특혜를 나누어주는 입장에 있을 때, 인허가를 따내기 위한 로비가 치열해지고,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선을 넘어 뇌물을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소위 이권추구형 사회(rent-seeking society)는 관치경제 아래에서 싹트기 쉬운 법이다. 전통적으로 남미의 심한 부패가 바로 이런 유형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제대로 했다면 부정부패가 줄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부정부패가 도를 넘어,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걸 보면 결국 현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목표는 잘 설정했지만 그 실천 의지가 불철저했거나 노력이 불충분했다는 뜻이다. 다음 정권은 현재의 총체적 부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부패 방지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이정우 경북대교수 경제통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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