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조선의 명풍수 낸 경북대 김문기 교수

입력 2002-05-01 14:20:00

'태조 왕건이 태어날 집터를 잡아준 도선(道詵)대사도 불효자에게 명당을 잘못 잡아줬다가 혼쭐이 났다. 퇴계 문하에서 쫓겨나 풍수공부를 한 조선 중기의 명풍수 남사고 (南師古)는 선친의 유골을 아홉번이나 이장하는 과욕을 부리다가 무자식 팔자가 되고 말았다. 명지관 박상의(朴尙義)는 10년 동안 명당을 구하다 결국 뒷산에 부친의 뫼자리를 썼다'.

경북대 김문기(金文基.52) 교수가 풍수에 관한 구전설화를 '조선의 명풍수'란 책으로 이화문화출판사에서 펴냈다. 지관(地官) 즉 풍수사(風水師)에 관한 일화 중 명풍수 이야기를 골라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풍수의 비조인 도선대사를 비롯한 남사고.박상의.숙종대왕.성지대사.무학대사.어사 박문수.토정 이지함 등 역대의 명풍수와 숱한 무명 명풍수의 풍수비법과 기담 등을 파노라마처럼 담았다.

"시대를 풍미하는 민간신앙으로 자리잡은 풍수사상은 자연히 수많은 풍수설화를 남겼지요. 여기에는 명당을 얻음으로써 조상에게 효도하고 자신과 후손의 부귀수복을 도모하려는 구복(求福)의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예로부터 도읍과 주택을 길지에 잡아 발전과 번영을 꾀했고 조상의 유해를 명당에 안치해 동기감응(同氣感應)에 의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했는데, 이같은 저변의 의식은 과학문명의 시대인 오늘날에도 큰 변함이 없다고 한다.

"우리 풍수관에는 이처럼 명당을 얻으면 발복하고 흉지를 쓰면 화를 입는다는 운명론적 가치관이 적잖은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명당을 얻기 위해서는 후손은 물론 망자(亡者)도 선업(善業)을 지어야 한다는 점을 더 주시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풍수설화에 내재된 권선징악적이고 운명개척적인 건전한 가치관을 눈여겨 봐달라고 한다. 이와함께 풍수지리가 막연한 운명론이나 원시적 미신이 아닌 자연친화적이고 현실적인 민간사상임을 강조한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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