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2-04-29 14:04:00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 감아버리더니

한웅큼 한웅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김형영 '따뜻한 봄날'

이 시의 표면적 구조는 늙은 어머니가 아들 등에 업혀 꽃구경가는 단순 구조이지만, 이면구조인 내용은 중층적이다. 우선 아들은 늙은 어머니에게 꽃구경을 시켜드리려고 하지만 늙은 어머니는 고려장으로 자신을 산속에 버리고 가는 게 아닐까 의심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아들이 행여 길을 잃고 헤맬까봐 솔잎을 뿌려 돌아갈 길을 만든다. 자신을 산속에다 버리는 아들에게까지 향한 이 가없는 어머니의 마음! 따뜻한 봄날 뜨거운 시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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