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제대로 된 '문화 이벤트' 하나

입력 2002-04-25 14:44:00

버트 랭카스트가 주연한 1960년대 미국영화 '대열차작전'은 2차대전 당시 파리의 레지스탕스들이 독일군의 프랑스 미술품 약탈작전을 저지하는, 사실(史實)에 가까운 항쟁기록이다.

파리의 미술품을 몽땅 베를린으로 실어나르려는 독일군과, 열차가 프랑스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연결레일을 교묘히 변경, 마침내 미술품의 국외반출을 저지하는 파리시민들의 필사적인 저항이 엮어내는 감동적인 드라마다.

지금 대만 고궁박물관에 있는, 자그마치 62만점이나 되는 보물과 미술품들은 수천년 중국의 역사 그 자체다. 마오쩌뚱(毛澤東)에 패한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1949년 대만으로 패주할 때 군대를 줄이는 대신 화물선에 중국최고의 유물들만 3만개의 상자에 담아 수천리 바닷길을 헤쳐온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갖고 있는 쪽이 중국의 역사, 정통성의 소유자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지금 그것들은 대만정권의 엄청난 무기요, 자원이다. 당시 장제스 정권이 문화재를 청산의 대상으로 보기는커녕 대륙을 뺏기면서도 지켜내던 모습, 그리고 일본군을 피해 난징(南京)에 두었던 그 문화유물을 장제스 군대가 대만으로 옮길 때 마오쩌뚱이 손상을 막기 위해 공세를 늦췄다는 그 사고(思考)의 역사성이 유물 그 자체보다 더 부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 두사람의 생각은 그들 사후(死後) 대륙과 대만의 유물들이 공동전시장에서 만나는 감격으로 매듭된다.

사실 오늘날 국가의 힘과 영향력은 더 이상 지리적·영토적 문제에 근원하고 있지 않다. 군사력이 고용과 번영을 창출하지 못한다고 볼 때 실질적인 국력이란 이제 경제적·문화적인 개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99년 화제작 '쉬리'의 흥행 기록을 1년만에 깼다거나 2000년 한해 한국영화 수출액이 700만달러로 치솟았다는 기록들이 작지만 그 한 예다.

우리는 흔히 미국·유럽 등 선진외국에 나갔을 때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한국코너의 그 턱없는 빈약에 부끄러워하면서 동시에 문화재·예술품의 해외반출이란 피해의식에 젖는 '이중성'에 고민한다. 해외로 내보낼 건 내보내고 찾아올 건 찾아오는, '상업적이고도 동시에 문화적인' 문화·문화재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젠 문화 경쟁력이 국력

관련학자들은 상업적이지 못하고 관련공무원들은 문화적이지 못하다. 50, 60년대의 문화·문화재 쇄국정책과 법령을 아직도 신주단지처럼 끌어안고 있어서야 '세계화'도 없고, '지방화'도 없다. 결국 어느 나라, 어느 지방이든 그 문화를 그냥 간직만 하고 있어서는 문화는 힘을 쓰지 못한다. 문화를 자원화하고 이벤트화 해야하는 당위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충북의 소도시 청주에서 '작은 이벤트 큰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바로 청주시민이 함께하는 '직지찾기 운동'이 그것이다. 왜 그곳에서 갑자기 직지(直指)인가? 갑자기가 아니다. 정확히 30년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도서의 해' 기념전시회가 있었고, 거기서 고색창연한 책 한권이 소개됐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직지심경(直指心經).

1377년 고려 우왕3년에 간행된 이책이, 그때까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이던 독일 구텐베르크의 성경책을 78년이나 뒤로 밀어내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유네스코가 공인한 것이다. 이 엄청난 '이벤트'의 주인공 직지심경은 원래 상·하 두권으로 이 중 하권이 구한말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 '콜랭 드 플랑시'의 손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왔던 것이다.

사실 이책은 백운 스님이 옛 고승들의 선(禪)관련 법어들의 모음집으로 불'경'이 아니다. 책밑부분에 붓글씨로 쓰인 '직지심경'이란 네글자를 보고 그대로 발표한 것이 잘못 굳어진 이름이 돼버렸다. 책의 본명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사연이야 좌우간에, 당시 직지를 찍은 출판사는 지금의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던 흥덕사(興德寺)였기 때문에 청주시는 92년 그 절터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세워 '직지'를 홍보하고 있고,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이후 97년엔 '직지찾기 모임'이 시민운동으로 번져 지금은 가칭 '직지와 문화'라는 법인체로의 확대개편 단계까지 와 있다.

이들이 직지찾기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이는 데에는 이 최고(最古)의 활자본 원본이 반드시 또 있을 것이란 흥분과 청주시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맞물린 산물이다.

淸州 '직지찾기운동'의 사례

'청주=세계최초 금속활자의 고장'이란 아이템 이상의 경제적·문화적 이벤트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은 이 보물이 남의 나라에 가 있음에도 프랑스와 유네스코를 끈질기게 설득, 2001년9월 마침내 '직지'를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데 성공했으며, 해마다 인쇄출판문화축제는 물론 마라톤 등 각종 대회와 행사에도 '직지찾기'이름을 붙여 이벤트화에 노력하고 있다.

갑자기 웬 청주얘기냐고 할지 모르나, 대구에 시립박물관이나 역사도서관 같은 '하드웨어' 하나 없음이 안타까워서다.이러니 "이거다"하고 내세울 만한 문화이벤트 또한 없을 수밖에 없고, 지역의 인물·역사·사회문화적 자료유산들의 역외유출만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새로 뽑는 단체장선거에서 경제와 문화를 함께 쳐다보는 인물을 기대한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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