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바다와 흰 파도, 갈매기들의 날갯짓, 멀리 수평선 너머 고기잡이배의 불빛, 항구로 찾아드는 화물선….외딴 곳 하얀 등대에서 호젓한 밤을 보내는 이색여행을 떠나보자.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콘도형이라 간단한 먹을거리만 준비하면 여행준비 끝. 자녀들을 위한 등대 체험학습으로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뭍에 사는 사람 치고 바닷가 경치에 홀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개방형 숙소를 운영하는 등대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서도 알려진 절경을품고 있는 곳들이다. 그만큼 입소문을 통해 올 초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유인등대 중 일반인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갖춰진 곳은 10여곳. 해양수산부는 등대가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자 지난2000년 6월부터 직원관사를 콘도형 숙박시설로 개조해 일반인들에게 개방했다. 보일러와 에어컨까지 갖춰 시설도 괜찮은 편. 작년까지는 1만원정도의 숙박료를 받았지만 올해부터는 무료다.
호미곶(작년 12월 29일 장기곶에서 호미곶으로 지명 변경) 등대도 그 중의 하나다. 19일 개관한 등대박물관(054-284-4857)과 해맞이광장을 끼고 있어 가족여행으로도 안성맞춤.
포항시내에서 40분 정도를 달리면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등대가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 이르면 한창 이삭이 패는 탁 트인 보리밭을 만난다.매년 이맘때면 등대 옆 유채꽃이 알려진 명소였다. 요즘 어디서 이런 보리밭을 만날 수 있을까? 봄바람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녹색 보리밭은 시공을 넘어 유년시절의 고향으로 데려다준다.
멀리 보이는 초대형 풍력 발전기와 우뚝 솟은 하얀 등대, 푸른 바다와 어울려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등대는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성'과 같다. 그 성문을 열고 속살을 들여다본다는 설렘으로 들어서면 성안은 온통 기분좋은 바다냄새로꽉 차 있다.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 벽돌만으로 건축한 8각형의 높이 26.4m(내부 6층)인 호미곶등대는 1908년 세워졌다. 100년 가까이 동해연안과 포항항을 지나는 배들의 길잡이였다. 천장엔 조선시대 왕실의 상징문양인 오얏꽃이 조각되어 있다. 등대로서는 유일하게 지방문화재로등록될 만큼 건축학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
미곶등대는 밤이면 12초마다 희망이 켜진다. 이는 국제적인 약속.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은 불빛 간격만 보고도 호미곶인 줄 안다. 날씨가 허락한다면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을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숙소 앞 잔디밭에 앉으면 별자리들도 한뼘씩 가까워져 있다. 하지만 별빛에 취해 밤을 지샐 수는 없는 일. 자칫 늦잠에 다음날 일출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곳 호미곶등대에서의 볼거리중 백미는역시 일출이다. 동쪽 땅끝이라 우리나라에서 해돋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기대도 새벽잠을 깨우는데 한 몫 한다. 특히 해맞이광장의 거대한 청동조형물 '상생의 손'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한폭의 그림 같다.
1월 1일의 해면 어떻고 오늘 보는 해면 또 어떠랴. 어차피 해가 떠오르는 그 짧은 순간 그곳에 있으면 누구나 시인이고 화가다. "결혼 10주년을 맞아 이곳 등대서 맞는 일출은 특별한 느낌으로 와닿더라고요. 게다가 무료로 이런 숙박시설을 이용하고 보니 더 좋을 수 밖에요".
두 아이와 함께 지난주 호미곶등대 개방숙소를 찾은 김용현(38.강원도 춘천시 퇴계동)씨. 인터넷으로 어렵게 정보를 구해 멀리까지 왔지만 등대 개방숙소 덕분에 잊지 못할 결혼 10주년 기념여행이 됐다고 기뻐했다.
그동안 벼르고 별러 바닷가까지 왔다가 바다냄새만 맡고 휑하니 떠나는 게 얼마나 억울했던가. 이색숙소에서의 하룻밤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등대박물관을 들러볼 일이다. 호미곶등대 옆의 등대박물관은 국내에서 등대 관련 자료를 소장.전시하는 유일한 곳이다.
1985년 개장했다가 부대시설.전시물을 보완해 19일 재개관했다. 항로표지 용품과 바다관련 유물 320종 3천여점을 확보하고 그 중 5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관람객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면서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관을 꾸며 체험학습 공간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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