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지금 '성폭행과의 전쟁중'

입력 2002-04-18 14:00:00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강간은 풍토병이다'.경찰과 정치인, 사회학자, 강간희생자 등 남아공 국민들은 모두 이 말에 동의한다. 영국 BBC방송은 최근 남아공에서 여자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강간과의 전쟁'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남아공에서 태어난 여자는 글 배우는 것 보다 강간당할 기회가 훨씬 많다. 어린이 지원그룹 '차일드라인'에 따르면 소녀 4명중 1명은 16세 이전에 강간위험에 직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아공은 가정폭력과 어린이 성폭행 발생률, 강간비율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중 하나로 보고돼 왔다. 공식 범죄통계에 따르면 1994년 민주화 이후 1만8천801건 이었던 남아공의 강간사건이 2001년엔 2만4천892건으로 증가했다.

남아공 경찰도 강간이 심각한 사회문제인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엄격한 처벌을 천명하고 순찰강화에 나섰지만 대부분의 강간과 강간시도는 보고되지도 처벌받지도 않고 있는 상태다.

최근 남아공 의회가 유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새 어린이 성폭행 증가율이 무려 40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 성폭행 희생자의 대부분은 12세 이하였다. 심지어 2001년 10월27일 루이즈빌 노던케이프 타운에서 야만적으로 강간당한 '체팡'은 불과 9개월짜리 아기였다.

아기 강간은 남아공에서 새로운 현상으로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한 에이즈 예방 활동가는 "어린이나 아기와의 섹스가 HIV 및 에이즈 환자를 치료한다는 그릇된 신화가 널리 퍼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남아공은 전세계 어떤 나라보다 많은 450만명의 HIV 보균자를 보유하고 있다. 남아공에선 학교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남아공의료연구협회는 강간 피해 어린이의 3분의 1이 교사들에 의해 강간당한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이 협회는 남아공 정부가 성폭력에 대해 국민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데다 성폭력 희생자에게 적절한 치료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연구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강간당한 어린이의 85%는 10~14세 사이였다. 어린이 강간의 15%는 5~9세 사이에 발생했다. 조사는 또 '낯선 사람'과 마찬가지로 친척들도 비슷한 비율로 성폭행에 가담했으며 남자친구에 의한 성폭행이 큰 비율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조사자중 한 사람인 레이첼 주크스 박사는 "백인 소녀는 솔직히 성폭행 사실을 보고하지만 인도 소녀는 처녀성 상실이 결혼기회를 상대적으로 박탈하기 때문에 강간사실을 숨긴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또 아프리카인은 아프리카 여성을 강간하고 백인은 백인여성을 강간하는 등 대부분은 같은 종족그룹간의 강간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남아공 정부가 최근 제자와 교사간의 성적 관계를 금지하는 법안을 입안했지만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며 "일련의 아기 강간사건을 비롯 남아공 사회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남아공에서 강간이 성행할까? 레이첼 주크스 박사는 여성들에 대한 남아공 남성들의 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남아공 남자들이 성적으로 여성들을 소유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믿는 문화가 문제입니다. 성적 불평등이 없는 상황에선 강간당하지 않아요".

그녀의 이러한 연구결과는 집단 강간당한 뒤 HIV 양성반응을 나타낸 로즈 타매의 경험에서 나왔다. 로즈는 요하네스버그 서쪽 소웨토 지역 고속도로를 가로지른 '오렌지 팜'이란 흑인거주지역에서 성폭행당한 여성과 어린이들을 상담하고 있다. 로즈 타매의 말을 들어보자.

"오렌지 팜 같은 흑인거주지역의 남자들은 대부분 실업자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멀리까지 일하러 가야 하지요. 이 때문에 종종 가정에 남겨진 어린이들이 남자나 '낯선 사람'들에게 희생당합니다.

그들은 매우 약하고 다치기 쉬워요. 어떤 경우 어린 소녀는 섹스의 대가로 음식을 얻습니다. 에이즈에 걸리거나 병든 어머니가 있는 집에 빈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사회학자들은 지난 수십년간 남아공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폭력문화'가 성폭력에 관대한 태도를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어린이와 유아 학대를 타락의 징후로 믿고 있는 야곱 주마 남아공 부통령은 "악명 높았던 '어파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가 가족제도의 와해에 씨를 뿌렸다"고 비난했다.

어파트헤이트 뿐 아니라 남아공의 형사제도도 성폭력을 근절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지난해 보고된 2만4천892명의 강간범 중 단지 1797명만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남아공 정부는 성범죄 응징을 준비하고 있다. 성범죄자를 우선 처벌하는 한편 보다 엄격한 선고를 하도록 사법당국에 요구했다. 경찰관도 성범죄 피해자를 다루는 교육을 받고 있으며 많은 사설 병원도 특별 강간 치료와 카운셀링을 제공하고 있다.

보험회사 역시 강간 피해자들의 HIV 및 에이즈 감염피해를 줄이는 치료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남아공에 만연한 '강간 문화'를 되돌려 세울지 의심스럽다.

조영창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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