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결정론의 관점에 의하면, 인간의 활동이나 정신은 그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먼저 사람이 환경을 만들지만, 다시 그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이치다. 과연 개인의 거처는 물론 마을과 도시는 삶의 터전으로서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환경의 영향은 처음에는 강한 자극을 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거부반응은 차츰 무디어지고 결국 그냥 보통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최면효과처럼 그 심각성마저 잊어버리게 되니, 길들이기에 익숙해지는 것과 같은 함정이다. 따라서 잘못된 디자인의 채택이나 자극적 환경의 조성도 일단 강행하고 나면 흐지부지되어 버리는 묘한 결과가 된다.
월드컵의 손님맞이 채비가 한창이다. 환경개선의 좋은 기회다. 허나 제대로 꾸며야겠다. 급한 김에 잔디 대신 보리를 심어 푸르게 치장하고, 아파트 베란다의 빨래를 걷어야 했던 시절에 비하면 크게 발전했다.
허나 이 시대는 오히려 디자인이 퍽 헤프다. 엉뚱한 치장의 대구 앞산 순환로의 가로등, 난데없이 등장한 가로녹지의 거창한 괴석, 건축을 사라지게 만든 광고간판, 문화재 복원마다 넘치는 인조물, 넘치는 슬로건, 유치하고 자극적인 색깔의 인도포장 등.
아무리 신세대 바람도 있고 국가적 이벤트라 하지만, 너무 치졸한 장식에 흐른다. 그 원인은 디자인의 미적 판단이 논리적으로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 검증도 되지 않은 유행에 치우칠 수도 있고, 관료의 취향이나 고집이 작용할 수 있으며, 전문가의 자만이나 편견도 문제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지방으로 갈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더 큰 원인은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한 상업주의다. 결국 공공디자인은 늘 기대효과를 달성해야하고 먼저 눈에 띄어야 하고 효과가 빨리 나타나야 하는 실적주의에 잡혀있다. 그러니 갈수록 자극적인 디자인이 될 수밖에. 이런 현란한 색채와 조잡한 형태의 디자인으로 이루어지는 환경의 영향은 심각한 교육적 역기능이 될 것이 뻔하다.
아무리 작은 부분적 디자인일지라도 우리의 정서와 문화의 정체성을 고려하되 도시환경 전체를 검토해서 차분히 책임이 있는 결정을 해야한다. 그 옛날 손님 맞을 때 의상을 수수하게 갖추고 소담한 찬을 준비하며 마당을 풋풋하게 쓸던 지혜가 아쉽다.
영남대 교수.환경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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