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회갑.출판기념회 가진 김원일씨

입력 2002-04-15 14:01:00

"대구는 내 문학의 싹을 틔운 고향입니다.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대구에서의 삶, 분단의 멍에를 진 궁핍했던 그때의 가정사가 사실상 내 문학의 원천적인 뿌리였지요".

소설가 김원일씨가 12일 밤 대구문예회관 부근의 토담집에 마련된 회갑연을 겸한 출판기념회에서 모처럼 대구의 문우들과 격의없이 마주앉았다. 매일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40년 가까운 문단이력을 쌓아오면서 한국문단의 거목으로 우뚝선 작가 김원일.

그의 이번 귀향은 의미가 각별했다. 올 3월로 갑년을 맞았다는 것 외에도 자신의 삶과 문학을 심층 조명한 '김원일 깊이읽기'(문학과지성사)와 대표작 '늘푸른 소나무'(이룸.전3권) 정본이 출간된데다, 소설 '마당 깊은 집'을 좋아하는 작가와 평론가들이 '마당발,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을 찾아가는 발걸음'(청동거울)이란 책까지 내놓은 터여서다.

이날 참석한 문우들은 도광의.이태수.이하석.박정남.박해수.구석본.이현주.강문숙.박지영.고희림 등 30여명. '김원일 깊이 읽기'에 회고담을 남길만큼 교분이 오랜 문인들과 동생 김원우(소설가)씨와 몇몇 친구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사회를 맡은 구석본 시인은 '오늘 이자리는 조촐하지만 성대한, 꽃은 없지만 향기로운 자리'라고 운을 띄웠고, 40년 지기인 도광의 시인은 문청시절의 향촌동 막걸리 냄새를 떠올린 다음 '좋은 문학은 라면이나 떡볶이가 아니다. 알아주는 단 몇사람의 독자를 생각해야 한다'란 작가의 일관된 문학관을 새삼 곱씹어봤다.

화답에 나선 작가는 자신의 문학인생을 회고하면서 고향의 후배 문인들에게 치열한 작가정신을 애써 주문했다. 자신을 문학세계로 이끈 토마스 만과 지금 쓰고있는 새작품의 주인공인 피카소의 예를 들어가며 작은 재능에 안주하기보다는 부단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격의없이 술잔을 주고 받는 가운데 가수 이동원이 통기타 반주로 '향수'를 부르자 주흥에 겨운 노래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고향과 문학을 화제로 오가는 넉넉한 술잔에 백발의 작가도 자신의 문체처럼 범연한 표정을 일순 놓아버렸다.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있었던 축하연 자리와는 또 달랐다.

정감과 상념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마당 깊은 집'이 대구 약전골목의 다세대 한옥집이었고, '늘푸른 소나무'를 키운 곳도 대구가 아니었던가. 작가는 올초 중편소설 '손풍금'을 탈고했다. 해방공간의 이야기, 당시 북한의 삶에 대한 소설적인 첫 시도이다. 그리고 피카소의 예술가적 삶에 대한 전기를 400매 가량 써놓았다.

이순(耳順)을 넘겼지만, 작가는 문학적 열정 만큼이나 술에 대한 사랑도 아직은 지칠줄 모른다. 여전한 줄담배와 두주불사. 동생 김원우씨는 "평생 일만했으니 잠시잠시 쉬어가며 일하시라"고 안타까워했다.

구석본 시인의 표현처럼 '늘푸른 소나무' 한그루 쓰다듬더니 마침내 '슬픈 시간의 기억'을 건너 그렇게 푸른 소나무로 우리 앞에 서있는 작가 김원일. 갑년을 맞은 이번 귀향 출판기념회는 김원일을 더 깊이 읽을 수 있는 마당깊은 자리였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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