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숙제.준비물에 초등생 엄마 기가 막혀

입력 2002-04-15 14:06:00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은 아이들 숙제에 짓눌려 등이 휠 지경이다. 힘과 시간만 드는 게 아니라 보통 엄마들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난해한' 숙제들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 숙제가 돼버린 초등학생 숙제. 학부모들의 푸념을 들었다.

"가족동반 여행을 하고 사진 찍어오라는 숙제를 수시로 내요. 경주 유적지나 박물관, 전시회를 둘러보고 오라는 거죠. 시간이 없어 옆집 아줌마나 친정동생에게 부탁도 하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부담스러워요". 직장생활을 하는 주부들은 초등학생 엄마노릇이 기막힐 지경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평균 강수량, 기온, 인구 분포도 등을 컴퓨터로 출력해오라고 해요. 집집마다 컴퓨터가 다 있지는 않잖아요". "초고속 인터넷에 일괄 가입할 작정이라며 학교에서 아이디를 정해 오랍니다. 컴퓨터와 친해지는 것은 좋은데 마구 쏟아지는 음란물을 어떻게 막아요?" 한 40대 직장인은 아이 숙제를 대신하느라 동료들이 퇴근한 후에 몰래 회사 컴퓨터를 이용한다고 털어놓는다.

"아무리 아이디어를 짜내도 괜찮은 발명품 만들기는 힘듭니다. 작년엔 제가 잡지보고 만들었다가 학교장 상을 받고 전국대회에 출품까지 한다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어요". 저학년 숙제는 태반이 엄마 숙제라고 학부모들은 입을 모은다.

"아이들 준비물 중에 처음 보는 낱말이 많아 황당해요. 산가지(플라스틱 빨대를 10개씩 고무줄로 묶어 숫자 공부하는 교재)를 준비해 오라고해서 '살아있는 나뭇가지'인줄 알고 공원에 가서 나뭇가지를 꺾어 보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산가지는 물론이고 헌 단추까지 문방구에서 팔더군요". 이 엄마는 웬만한 준비물은 문방구에 다 있다며 학교 준비물 때문에 멀쩡한 옷, 가구를 뜯거나 부수지 말라고 조언했다.

"작년에 4학년 짜리 아이의 숙제에 '대구시 행정의 잘못된 점을 논하시오'라는 것이 있더군요. 도대체 상식이 있는 선생님인지 묻고 싶어요". 이 엄마는 못하겠다고 그냥 학교에 보내면 아이가 혼자 남아서 숙제를 잡고 낑낑대기 때문에 같은 반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베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최소한 한 달에 2,3번은 제가 신경 써서 도와주지 않으면 전혀 할 수 없는 숙제가 나와요. 애 숙제용 사진 구하느라 저녁밥을 10시 넘어서 먹은 적도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한 직장인 엄마의 푸념이었다.

초등학생의 엄마인 한 여교사는 학생 혼자 해결하기 힘든 숙제는 안 좋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런 숙제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업 시간 안에 마칠 수 없는 교과과정이 있고, 아이에게 사전준비를 시킴으로써 호기심을 유발해 수업 집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그러나 선생님들이 숙제를 낼 때 아이의 입장에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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