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배달부는 더 이상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서울간 아들, 군대간 아들은 더 이상 '아버님, 어머님 전 상서'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지 않고,밤을 꼬박 새우며 고쳐 쓴 편지를 상기된 얼굴로 부치던 연인도 사라졌다. 이동통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집배원의 빨간 가방엔 '반가운 기다림'대신 반갑지 않은 우편물이 채워졌다. 각종 고지서, 출두 요구서, 카드요금 청구서…. 일반 편지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편 배달 경력 25년인 대구 우체국 김형동(53) 집배원, 세상의 변화를 고스란히 체감해 왔기에 그의 마음은 무겁다. 아침 7시30분 출근,9시30분까지 대구 우체국 2층 우편 물류과 작업실에서 배달할 우편물을 순서대로 꼼꼼히 정렬한다. 정확하게 정렬해야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번거로움과 시간낭비를 없앨 수 있다.
대구시 중구 중부경찰서부터 동산파출소까지가 그의 배달 구역. 이 일대의 크고 작은 간판, 먼지에 쌓인 문패까지 그는 훤히 꿰차고 있다.두 사람이 겨우 비껴 지날 만큼 좁은 골목 안쪽 작은 방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그는 안다. 효율적인 배달을 위해 머릿속에 담아둔 약도를 바탕으로 우편물을 배달 순서에 맞게 정렬하는 것이다. 분류작업이 끝나면 우편물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은 우체국을 빠져나간다.
집배원들의 배달 길은 추억처럼 아리지도 소설속에서처럼 목가적이지도 않다. 김형동씨의 배달 구역은 쉴새없이 차들이 지나는 번잡한 도심.흔히 북성로 공구골목으로 알려진 서야동 공구 골목의 기름냄새는 이제 만성이 됐다. 굉음을 내며 지나는 오토바이와 차는 그에게 거리의 일부로 인식될 뿐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언제 아이가 튀어나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사람 좋아보이는 중년의 집배원 김형동씨가 인사를 건네지만 20살을 갓 넘긴 사무원 아가씨는 그의 인사를 받을 여유가 없는 듯하다.기름 때 묻은 장갑의 40대 아저씨는 턱으로 우편물을 놓아둘 곳을 가리킨다.
'거기 어디쯤 두고 가시오'라고 말하는 듯 하다. 집배원의 오토바이가 대문 앞에 닿아도 강아지는 게으른 하품을 쏟아낼 뿐이다. 도장이 필요한 등기우편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가 왔다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다.멀리 동구 밖으로 시선을 붙박은 채 기다리던 빨간 자전거의 집배원은 이제 추억 속에서나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편지 한 묶음을 집어든 김씨는 쉴새없이 인근가게와 대문 안팎을 들락거린다. 그의 모습은 열심히 모은 꿀단지를 실어 나르는 벌꿀을 닮았다. 아주 가끔씩이기는 하지만 한자리를 오래 지켜온 가게 주인이 친구를 맞은 듯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주소가 제대로 적히지 않은 편지에도, 이미 편지의 주인이 이사를 가버린 소포에도, 집배원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주인 잃은 편지를 주인에게 찾아주는 것이 집배원의 기쁨이지요". 김씨는 집배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소식을 찾아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사가버린 편지의 주인을 찾느라 동사무소를 쫓아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집배원들에게 가장 힘든 날은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 비옷을 입고 배달하는 일은 춥고 더운 계절보다 힘들다고 집배원들은 입을 모은다. 흐르는 땀에 속옷이 눅눅하게 젖어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대구.경북을 아우르는 경북 체신청의 집배원은 모두 1천337명(전체 우체국 직원 4천310명). 1인당 1일 배달물량은 약 2천통.우편 집배원의 100㏄ 오토바이 2대 분량이다.
그래서 집배원들은 보통 오전 오후로 나누어 하루에 2번 배달을 나선다. 한 사람이하루에 달리는 거리는 농촌과 도시, 도심과 근교가 모두 달라 가늠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대략 15㎞에서 30㎞안팎이다.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표, 우체통 그리고 집배원의 자전거는 우리에게 기다림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기다릴 편지도, 예기치않게 찾아올 반가운 소식도 없다. 내일이나 모레쯤 반가운 소식을 받고 싶다면 오늘쯤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반가운 편지가 사라진 지금,집배원들과 주고받던 은근한 미소마저 사라지려 하고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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