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2-04-11 14:17:00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무에 걸린 바람도 비에 젖어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

내 팔에 매달린 너.

비는 밤이 오는

그 골목에도 내리고

비에 젖어 부푸는 어둠 속에서

네 두 손이 내

얼굴을 감싸고 물었다.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장 뜨거운 목소리로.

-전봉건 '抒情(서정)'

아마 비오는 골목길에서 애인 사이인 두 사람이 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비에젖어 갈기갈기 '찢기고 있었다'는 표현이 긍정보다는 부정, 상승 보다는 하강의 이미지를 뒷바침하고 있다.

비에 젖어 부푸는 어둠이라는 표현은 다소 상투적이지만 재미있다. 헤어지면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혹은 가장 뜨거운 목소리로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그게 궁금하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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