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갯마을의 '벽안翁'

입력 2002-04-09 15:04:00

요즘 몰아치는 황사 바람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한반도 공기의 고마움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이렇듯 우리는 주변에 남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만 흔하다는 이유로, 또는 가깝다는 이유로,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외국인의 눈에는 종종 그 아름다움이 강렬하게 각인(刻印)되는데 그동안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자연과 문물을 사랑했지만 생애 마지막까지 한국에 남아 그것을 지킨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지난 8일 한국의 멋에 취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의 흙냄새와 풀냄새를 맡고간 외국인 민병갈(82·본명 칼 밀러) 천리포 수목원장의 부음은 마치 고향 할아버지의 죽음처럼 한국인의 가슴을 적신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난 민 원장은 50년 해군 장교 계급장을 달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인천에 발을 디딘 것이 한국과의 첫 인연이었다. "군용차로 서울까지 오는 동안 산과 옹기종기 모여앉은 초가집 풍경에 매료됐다"고 회고했던 그는 전역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자연과 풍물을 찾아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했다.

70년부터 충남 태안반도 갯마을에 땅 18만평을 사들여 수목원으로 가꾸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풀냄새에 도취됐으며 증권회사 고문으로 일하면서 받은 월급과 주식투자 등으로 번 돈은 몽땅 수목원에 쏟아부었다. 한국이 좋아 79년에는 아예 귀화했다.

▲세계 36개국에서 3천800여종을 들여와 심고 애써 가꾼 덕에 천리포수목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9천730여종의 식물 자원을 보유함으로써 '동화 나라' 같은 별천지가 되었다. 특히 목련을 좋아한 그는 목련만 413종을 수집했으며 97년에는 국제목련학회 총회, 98년에는 국제수목학회 총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2000년 10월에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수목협회에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임업인으로서는 건국 이후 처음으로 산업훈장 중 최고격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의 한국 사랑은 남달랐다. 그의 집에 가보면 주인 방은 온돌이고 가정부 방은 침대방이다. 수목원내 건물 12채도 모두 한옥으로 지었다고 한다. 2년에 한번씩 지붕을 이는 100년 넘은 초가집을 특히 좋아했다고 하니 사람들은 그의 전생은 틀림없이 한국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믿을 정도였다.

'완도호랑가시' 같은 한국의 고유식물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것도 그였다. 이제 그는 수목원 목련화 아래 묻혔다. 나무가 다칠까봐 사람 출입도 금했고 "나무란 자식 키우듯 해야 한다"는 그의 사랑을 '황금만능주의'에 젖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승화시켜나갈지 가슴 무거워진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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