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작문 교육

입력 2002-04-08 14:13:00

구양수의 삼다(三多)에 대하여 좀 비판해 보자. 흔히 작문 교육의 필수 요건으로 송나라의 문장가 구양수의 '삼다'가 금과옥조처럼 신봉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의 세 가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 봐야 잘 쓸 수 있다고 한다. 작문 교육을 하면서 나는 이 말대로 하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내가 아는 어떤 교감선생님은 언제나 책상 위에 책을 10권 이상 쌓아 놓고 계셨다. 참 독서를 많이도 하시는 분이었다. 철학서적에서부터 일상의 수필집까지 독서영역도 대단히 넓다. 언제나 과묵하셔서 생각도 많이 하신다. 그런데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그분의 잡문 한 줄도 읽은 적이 없다.

그 분이 직접 쓴 글이 어디에 발표되었다는 소식도 듣지 못 했다. 아니 한문으로 부의(賻儀)라고 쓰시는 것은 본 적이 있기는 하다.,또 내가 아는 현역 문인 중에 끊임없이 시를 발표하고 신문에 글도 꽤 발표하신 분이 계신다.

그런데 나는 이 분이 서점에 들르는 것이나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언제나 다른 분과 즐겁게 떠들거나 담소하시는 모습만 내 뇌리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도 그 분의 상상력과 문장력과 대단하시다.

이렇게 볼 때 책 읽는 사람은 책만 읽고 글쓰는 사람은 글만 쓰고 궁리하는 사람은 궁리만 많다. 이 세 가지 일이 뭔가 끈이 없이는 연결되지 않는다. 특히 그 중에서도 작문은 국어의 표현영역이면서도 실기라고 봐야 옳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서평을 쓰거나 독후감을 적지 않는다면, 글쓰기는 신장되지 않는다.

또 그렇게 쓴 것을 누군가가 읽고 그 감상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해 주지 않으면 그 식견은성숙하지 않는다. 글은 혼자만 감추어 놓고 쓰거나 읽어 줄 사람이 없는데도 쓰기만 하면 늘지 않는다.

학생이 쓴 작문을 읽어 줄 시간이 없다면 작문 숙제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야 낫지 않는가 하고 물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수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자꾸 쓰는 일만 숙련되면 혼자 자란 아이처럼 자기 주장이 강한, 엉터리 글쓰는 방법만 굳어지게 된다.

경북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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