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일, 정부와 민노총 사이에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져 38일 간에 걸친 발전사업노조의 파업사태가 종결됐다. 그것은 발전사업을 민영화하는 데 저항하는 파업이었으나 효율과 발전을 위해서는 민영화란 불가피하다는 것이 거의 일치된 여론이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 사태를 냉정하게 관찰한다면 여러 가지 생각을 되씹게 된다. 김대중 정권은 이제 임기를 얼마도 남기지 않고 있는데 왜 이런 어려운 과제를 내걸고 거리를 소란스럽게 하는 것일까.
그동안 친인척이나 측근들의 스캔들로 상처를 입을 대로 입었을 테니까 여기서 한가지만 선의의 해석을 가해보는 것을 허용해 주기 바란다. 만약 철도나 발전 같은 사업을 민영화하는 것이 세계의 추세이며 적자를 줄이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개혁에는 아픔이 따르고 저항이 따른다.
그렇다면 이 개혁 사업을 차기 정권에 넘긴다면, 앞으로는 대통령의 힘이란 더욱 약해지기 마련일텐데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3김의 시대가 지나간다는 것은 제왕적인 지배가 끝난다는 것이고 앞으로 국민의 힘은 더 거세지고 통치자나 그 세력은 군림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라면 정부나 국가가 표류할 위험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개혁이 불가피하다면 현정권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에도 불구하고 개혁과제를 추진해 주어야 한다. 누가 대권을 잡든 차기 정권을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는 말이다.
카리스마를 가졌던 3김에 비하면, 제왕적인 지배에는 비판적이라고 하면서도 우리는 지금 경선을 거쳐 대권에 도전하려는 분들을 바라볼 때 어쩐지 무게가 없고 그릇이 그다지 크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실례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모두가 아류(亞流)에 가까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그거야 오랜 세월동안 거친 한국 정치사를 뚫고 노령에 이른 3 김에 비하면 그럴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런 제왕적 대통령은 이제 한국의 오늘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 것 아닌가. 개혁을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아픔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더욱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제왕적인 호령으로 해내려는 낙하산식 개혁을 몹시 혐오했다,
그런데도 차기 대권을 노리는 분들도 저마다 개혁을 소리 높이 외친다. 개혁은 현대적인 긴급한 요청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우리 국민에게서 떠날 수 없는 심성이라고 해야할는지 모르겠다. 러시아 혁명을 피하여 파리로 망명했던 철학자 니코라이 베르쟈에프의 말이 생각난다.
'러시아에 있어서의 혁명은 하나의 종교이고 하나의 철학이며 생활의 사회적 측면에만 관계하는 투쟁이 아니었다'
이웃 나라 일본에 비하면 변혁과 개혁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엄청나게 높다. 그것은 유교적인 왕도정치, 이상의 나라를 꿈꾸면서 현실을 혐오했던 주자학적인 전통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에너지라고도 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자칫하면 오늘은 언제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비난과 불만으로 뒤덮이기 쉬었다.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거기에 민주주의를 향한 커다란 전진이 있다. 대권을 다투는 주자들에게는 개혁에 대한 결의를 천명하는 데 앞서 개혁을 위하여 국민의 지혜를 모으고 국민과 더불어 대화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제왕적 지배자들의 실패를 지적하고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진정한 개혁의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든다면 야당도 언론도 개혁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길이라든가 하는 것 말이다.
나치를 피해가다 자결한 천재적인 유대계 독일인 사상가 발터 벤야민의 말을 들어보자. 과거를 폐허를 바라보듯 응시하고 있을 때 강풍이 일어나서 우리를 미래로 밀고 간다. 거기에 진보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날에 대한 냉철한 반성 없이는 개혁이나 진보가 따르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명관(한림대 일본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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