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나무 태운 날'

입력 2002-04-06 14:56:00

아이슬란드의 작가이자 정치가인 스노리 스튀를뤼손의 소설 '에다'에는 거대한 물푸레나무가 등장한다. '이그드라실'이란 이 나무는 세계의 축이자 버팀목으로 묘사된다. 지혜의 신 '오딘'은 이 나무에 매달려 아홉 날 아홉 밤을 보낸 뒤 물푸레나무로 남자를, 느릅나무로 여자를 만든다. 북유럽 신화뿐 아니라 나무를 통한 창조 신화는 지구촌 곳곳에 적지 않다. 인간과 나무가 그만큼 오랫동안 상생(相生) 관계였다는 사실을 말한다. 한 사람이 평생 쓰는 나무는 350그루라는 얘기도 있다.

▲지난해 산림청은 우리나라의 숲이 국민들에게 주는 혜택을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50조원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9.7%로 국민 한 명당 106만원 정도나 된다. 지난 1970년대 이후 나무 심기가 활성화돼 산림축적도는 선진국 수준이라 한다. 그러나 목재 자원으로 활용 가능한 나무가 적고, 산림을 지키는 데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올해 식목일은 사상 최악의 산불 사태로 '나무 태운 날'로 기록될 것 같다. 5일은 64일째 건조주의보가 이어진 날이기도 했지만, '나무 심는 날'이 전국 62곳에서 수백㏊의 귀중한 산림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중앙재해대책본부와 산림청 등에 따르면, 이날의 산불은 통계를 잡기 시작한 1970년 이후 하루 발생 건수로는 사상 최다이다. 진화 작업에도 헬기 120여대와 연인원 1만2천여명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식목일·한식 등이 낀 징검다리 연휴로 산을 찾는 성묘객과 등산객이 전에 없이 붐볐다는 사실은 탓할 바가 아닐는지 모른다. 하지만 밝혀진 산불 원인이 26건 중 20건이나 그들에 의한 실화(失火)였고, 산림 피해가 가장 심각했던 2000년 식목일의 521㏊(50건)보다 면적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이쯤 되면 나무 심는 날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고, 산림 손실이 인재(人災)가 주요 원인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872년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시작된 식목일은 오래 전부터 지구촌의 나무 심기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시대엔 3일이 식목일이었으나 광복 후 5일로 바뀌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수하고, 조선조 성종이 왕실 소유 밭을 경작한 날도 바로 이날이었다. 민족사와 농림사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계절적으로 적기임도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젠 나무를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가꾸기 위한 '내실 있는 산림 관리'와 인재가 대부분인 '산불'을 예방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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