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 운주사

입력 2002-04-04 14:13:00

한결같이 못생겼다. 어떻게 부처들이 저렇게까지 못났을 수 있을까? 파격이다. 그러면서 크기도 제각각, 형태도 제각각이다. 몇번씩이나 보는 사람들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

운주사(雲住寺.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의 석불과 석탑들은 그렇게 천년의 세월을 표정없이 지내왔다. 원래 이곳엔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여기씩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석탑 12기와 100여 돌부처가 남아있을 뿐이다.

운주사는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무대로 등장하면서 알려졌다. 그 뒤 민중의 해방을 가져다주는 미륵성지로 떠올랐다. 80년 광주민주화항쟁 이후에는 지식인들의 순례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곳이 '희망의 땅'이 된 것은 왜일까? 신라 도

선국사는 하룻밤새 천불천탑을 완성하면 미륵이 지배하는 새 세상이 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일을 하기 싫은 동자승이 새벽닭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하늘의 석공들이 마지막 와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가 버렸다. 물론 새 세상도 오지 않았다. 길이가 12m인 와불은 모두 2기. 이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 세상이 온다는 와불에 얽힌 이 전설이 운주사가 희망의 성지가 된 사연임을 짐작케 한다.

담장도 없이 벌판에 서있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천불천탑의 용화세계(불교에서 말하는 유토피아)로 빠져든다. 일주문은 현실에서 역사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관문인 셈. 못난이 부처들은 일주문에 들어서면 바로 볼 수 있다.

오른쪽 바위 밑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있는 석불들은 지쳐 보인다. 1994년 발굴조사에서 12세기에 절이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으니 천년의 세월을 버텨오는 동안 피곤해서일까? 하나같이 비스듬히 바위에 등을 기대고 서있다. 세월에 깎이고 깨지고…. 이목구비조차 제대로 분간할 수 없다. 석불들은 그렇게 점차 돌덩어리로 변해가고 있다.

돌로 만든 불감 안에 있는 부처는 나은 편. 산기슭 곳곳에 노숙을 하고 있는 불상과 달리 편안해 보인다. 벽을 사이에 두고 두 분의 부처가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특이한 형태다. 이 석조불감은 9층석탑.원형다층석탑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 석불도 코 성형수술을 했다. 자세히 보면 시멘트로 덧붙인 흔적이 역력하다. 돌부처의 코를 갈아 마실 만큼 간절히 아들을 원했던 이땅의 아낙들을 생각하면 처절하다. 하긴 석불들이 하나같이 부처의 위엄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오히려 코를 뜯어가기 편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를 뜯긴 부처들은 무표정하다. 그런 모습들이 오히려 더 친근하고 정겹다.

와불 아래쪽에는 하늘의 북두칠성 위치를 그대로 딴 칠성바위가 있다. 둥근모양으로 깎은 바위의 크기와 배열위치가 북두칠성의 밝기와 방위를 반영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모양을 땅에 재현해 놓은 건 석탑들도 마찬가지다.

절 입구엔 밤하늘의 일등성과 탑의 배치가 일치함을 천문도로 보여주고 있다. 하긴 접근하기조차 힘든 곳에 탑을 세운 이유가 궁금하던 터였다. 그 옛날 천불천탑을 세운 사람들은 이곳 산등성이에 또 하나의 우주를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곳 석불과 석탑은 어느것 하나 같은 게 없다. 입구 좌우 산자락마다 사람 발길 닿는 곳이면 어김없이 하나씩 서있다. 가족과 함께 온 답사여행이라면 사진 필름을 아낄 일이다.

이색적인 풍경에 이곳저곳 셔터를 누르다보면 필름이 모자라기 때문. 대구답사마당의 운주사답사팀의 안내를 맡은 민속사학자 이한기 박사는 "이곳의 천불천탑도 모두 호국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생긴건 제멋대로여도 호국의 염원을 안고 천년을 버텨내고 있는 셈이다.

이곳 석불들은 석굴암의 부처와 달리 조형미는 무시되고 석탑들도 다보탑 같은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다. 세상을 바꾼다는 전설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 하나하나가 서민적이다. 법당 안이 아닌 비바람을 맞으며 노숙하는 부처. 나를 닮은 부처. 오늘도 여전히 중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인근명소

화순에는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이 많다. 그중에서도 쌍봉사와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군은 빼먹을 수 없는 곳. 쌍봉사(화순군 이양면 증리)는 통일신라 시대(839년 이전)혜철선사가 창건하고 철감선사가 사자산문을 연 유서 깊은 절. 크지 않은 절이지만 3층 목탑형식의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둘 뿐인 건축양식이다.

쌍봉사 뒤편 계당산에 위치한 부도밭에는 우리나라 부도의 최대걸작 철감선사부도(국보 제57호)와 부도비가 있다. 돌을 나뭇조각하듯 한 뛰어난 조각솜씨를 볼 수 있다. 운주사 가는 도중 도곡면사무소 직전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5㎞를 가면 고인돌군을 볼 수 있다.

▨가는 길

△승용차=대구~88고속도~광주~너릿재터널~화순~능주~운주사(3시간 30분 소요). △대중교통=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광주행(금호.중앙고속, 40분 간격 배차, 3시간40분 소요). 광주 광천터미널 앞에서 318.218번 운주사행(배차간격 1시간, 50분 소요).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