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상품 문화(15)-일본(3)-쿠사츠 하계 음악페스티벌

입력 2002-04-03 14:36:00

일본 군마현 북서부 시라네산 동쪽, 해발 1천200m에 위치한 쿠사츠는 일본 3대 온천으로 꼽히는 게로 온천을 비롯, 크고 작은 자연 온천 100여개가 자리잡고 있는 온천지대다. 쿠사츠 온천은 에도시대 중기부터 치유욕으로 이름나기 시작, 에도시대 끝 무렵엔 상당한 유명세를 떨쳤다.

온천을 둘러싼 2천m급의 수려한 산세와 귀중한 고산식물, 화산대 특유의 경관으로 쿠사츠 주변은 국립공원으로지정되어 있다. 잘 정비된 하이킹코스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시라네산 화산호수를 돌아 보는 것도 좋은 관광거리.

산록에는골프장과 테니스장 등 스포츠 시설이 자리잡고 있어 서양과 일본 문화가 교차하는 격조 높은 산악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또 초겨울에서 늦은봄까지 유난히 겨울이 긴 쿠사츠에 차가운 북서풍이 눈을 몰고 오면 본격적인 스키시즌이 시작된다. 쿠사츠는 일본 최초의 스키리프트, 일본 최초의 스키학교, 일본 최초의 스키대회 등 일본 스키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이런 이력을 가진 쿠사츠에 여름이 찾아오면 국내외 일류 아티스트들이 넉넉한 클래식 음악을 선사하는 하계 음악아카데미 페스티벌을 연다.쿠사츠 하계 음악아카데미 페스티벌은 지난 80년 시작됐다. 여행 패턴이 단체관광에서 가족단위로 바뀌면서 온천, 스키장을찾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게다가 산악지형으로 인한 교통 불편까지 겹쳐 쿠사츠를 찾아오던 많은 관광객들이 여행지를 해외로 바꿔 쿠사츠 쇠퇴를 가속화 시켰다.

도쿄에서 쿠사츠로 가기 위해서는 하루 4번 있는 신칸센을 타고 쿠사츠역에 내린 다음 다시 버스로 산길을 한참 동안 올라가야 된다. 도쿄 신주쿠역에서 버스를 탈 경우 쿠사츠까지 4시간 정도 소요돼 일본인들이 여행지로 외국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에 따라 쿠사츠의 옛 영광을 되찾자는 취지에서 음악제가 출범했다.

쿠사츠 하계 음악아카데미 페스티벌은 유명한 탄광지대였지만 폐광 후 사양길로 접어 들었다 음악제를 개최하면서 문화도시로 거듭난 미국 아스펜 지역을 모델로 삼고 있다. 매년 8월17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음악제는 관동, 군마, 니가타현 음악인들이 설립한 칸신재단이 유명 음악가를 초청, 군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음악제를 위해 군마현, 쿠사츠시, 칸신재단 등은 24억엔을 들여 음악홀을 건립했으며 음악제에 필요한 9천만엔의 예산은 연주회 수입과 기업협찬, 칸신재단, 군마현, 쿠사츠시의 출연금 등으로 마련된다. 음악제는 출발 당시부터 하나의 테마를 정해 테마에 맞는 현대 음악 거장들의 초청 연주회와 작품 등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1회 음악제의 테마는 바하였으며 모차르트를 테마로 지난해 열린 제22회 음악제에서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해인 1756년에 만들어진 파이프오르간을 이태리에서 가져와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였다. 올해는 지금까지 보여준 독일 음악 위주의 분위기에 탈피, 파리와 빈을 주제로 한 음악제를 열 방침이다.

이와함께 음악제에서는 후진 양성을 위해 거장들이 마련한 강습회도 열리고 있다. 초청 받은 10여명의 국내외 저명 음악가들은 오전 실내악, 합창 등으로 분야를 나눠 강습을 하고 오후 4시부터 연주회를 가진다. 지난해의 경우 한국, 캐나다, 대만 등과 일본 국내에서 300여명의 학생들이 강습에 참가했다.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초청 음악가들은 마을 순회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쿠사츠 아카데미 친구회라는 자원봉사자 그룹을 결성, 음악회를 지원하고 있다. 음악제 시작 전후에는 성대한 파티를 열어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고 있으며 쿠사츠시에 위치한 호텔에서는 연주회와 숙박을 겸한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음악제 기간동안 600석의 음악홀 메인강당이 연일 만원을 이루고 있으며 인구 8천여명에 불과한 쿠사츠시에음악인들만 8천여명이 찾고 있다. 음악제 개최 전 일본 추석인 8월 15일 이후 온천을 찾는 손님이 없어 지역 경제가 어려움을겪었으나 음악제 개최 후 쿠사츠가 문화, 오락의 중심지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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