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수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삿짐 인부를 부른다. 한국에서 군인으로 근무했던 백인 인부는 한국인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갖고 수녀에게 충고한다. "한국사람들은 훔치지 않는 게 없어요. 마을사람들은 아주 거칠고, 한국여자들은 돈밖에 몰라요…".
수녀는 그 인부의 오해와 편견에 깊은 슬픔을 느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곳 사람들의 인심과 야량과 그곳의 보리 빛깔로 푸르른 봄과 시골 생활의 따스함과 황량함을 알고 있어…".
수녀는 "그 도둑놈의 나라에서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는 인부의 인사말에 자신도 모르게 그를 계단 아래로 떠밀어 버리고 만다'. 〈이삿짐 인부〉
루드 스튜어트는 아마추어 여류 작가다. 40여년간 한국에서 의료봉사와 선교활동을 한 탓에 그만큼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외국인도 드물 것이다. '토담에 그린 수채화(서지문 옮김.이룸 펴냄)'에는 그가 쓴 열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모두 아기자기하고 정감 넘치는 주제를 잡아 50년대 한국인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이국적인 색채나 외국인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당시 한국인들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삶을 한국인의 시선으로 포착했다. 미국인 수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삿짐 인부'와 달리, 대부분 단편은 한국사람이 주인공이다. 한국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사랑이 없다면 도저히 쓸 수 없는 글이다.
'어릴 때 앓은 결핵으로 불거져 나온 등을 가진 혜선은 아무도 접촉하지 않고 새벽녘 바닷가에 홀로 서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날 혜선은 산골에 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자와 혼례를 올린다. 그녀는 바다를 보고싶어 하는 남편과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처음으로 행복을 느끼고, 아이를 낳으면서 삶의 소중함을 배운다. 결혼한 지 2년이 채 못돼 결핵이 재발한 혜선은 혼례식때 입었던 분홍 비단옷을 보며 '내게는 너무 밝은 무색이야'라고 생각하다 샘가에서 쓰러져 죽는다. 〈너무 밝은 무색〉
아름답고 애처러운 사랑 이야기다. 그가 50년대 강원도 산간에서 결핵환자를 위한 자원봉사를 하면서 자연스레 체득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신도 두차례나 결핵에 걸렸을 정도로 결핵환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사춘기의 고뇌를 조용하면서 절박하게 추적한 '최우등생', 월남을 앞둔 한 가족의 위기의식과 한 어린이의 대담한 행동을 깔끔하게 그린 '깜깜한 한밤', 미국인 친구의 배신에 한국청년의 의분과 노여움을 과장없이 그린 '고적한 들의 명예' 등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편이다.
96년 은퇴해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2년전 뇌종양 수술을 받고 투병해왔는데 최근에 건강을 회복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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