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전화 도입 100년

입력 2002-03-20 14:50:00

우리나라에 민간전화가 도입된 지 오늘로 100주년을 맞았다.1896년 황실에 전화가 설치된 후 6년만인 1902년 3월20일 황성신문은 "한성(지금의 서울)에서부터 인천간에 전화를 설치했는데 전화사무소는 한성전보사와 인천전보사에 임시 설치했다"고 보도, 민간전화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전화소(전보사, 지금의 KT 지사 또는 지점)가 아닌 일반가정에 전화가 처음 설치된 것은 1902년 6월부터였고, 인천과 평양, 개성에는 한해 뒤인 1903년 2월쯤 본격 보급되기 시작했다. 대구에서 전화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06년 7월 대구우편국에서였다.

초창기 전화가입자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공문서는 1905년 4월 작성된 '각전화소청원인표(各電話所請願人表)'. 이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전화가입자 수는 한성이 50명, 인천 28명, 시흥과 수원이 각 1명으로 모두 합쳐 80명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청국인 또는 서양인이었다. 내국인 중에는 은행 및 대형상인이 포함됐을 뿐이다.

일반 시민들이 전화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매일 오전 7시~밤 10시까지 한성과 인천의 전화소에 직접 나와 통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통화료는 한 통화당(5분) 50전이었고 선납이 원칙이었다. 또 일단 납부된 통화료는 환불되지 않았다.

1910년 당시 쌀 80kg이 0.006967원이었음에 미뤄볼 때 전화 한 통화 가격은 쌀 73가마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또 통화중에 불온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서로 언쟁할 경우에는 1902년 4월28일 공포된 전화규칙 및 전화세칙에 따라 전화소에서 통화를 일방적으로 정지시키는 등 전화예절을 지키지 않은 사용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한편 1997년 5월 2천만을 돌파한 일반전화 가입자는 올해 2월말 현재 대구·경북 234만9천408명(KT 232만4천187명, 하나로 2만5천221명)을 포함, 전국적으로 2천288만7천591명(KT 2천210만8582명, 하나로 77만9천9명)을 기록해 선진국 수준의 통신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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