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T. S. 엘리엇이 4월을 가리켜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는 3월이 잔인한 달일 성싶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3월은 술의 달로 통한다. 거의 통과의례로 굳어진 새터, 대면식, 전학, 모꼬지 식순으로 대학생활을 하다보면 3월 한 달을 술로 보내기(?) 십상이다.
술로 몸을 망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이런 식의 통과의례가 변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늘 고정되어 있고 고여있을 뿐,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가 다른 의식이나 흐름과 접속할 줄 모른다. 대동제 또한 십수년이 흘러도 여전히 대동제다.
게다가 군대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오늘날의 대학이다. 예의 '대면식'이나 '전학'이 그러한 것인데 대면식은 감옥의 신고식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서, 선배가 일대일로 질문하며 대면식 후에는 새내기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을 돌고 정렬시킨다. 오늘날 대학에서 선배는 군 조교요 후배는 신참인 셈이다. 선후배 간의 우정을 돈독히 한다는 명분이지만 오늘날 통과의례로 치러지는 이 의식은 대학생들 스스로가 군대문화를 추종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따름이다.
대학의 군대문화는 대학생들이 사회와 급격하게 단절되기 시작하고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처럼 유약해지던 90년대 이후의 문화로 여겨진다. 필자의 대학시절 대면식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면식 말고도 전학은 대학생들이 군대문화에 길들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학급권력에 순종하고 그러한 권력을 숭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구 소련등의 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군대의 퍼레이드 규모는 아니지만, 전학한다고 교실에 모두 앉아있는 학생들을 볼 때, 구(舊)공산당 전당대회가 떠오른다면 과장일까? 총학생회부터 각 전공과에 이르기까지 위계질서화된 구조나 SKY대학부터 시작해 예컨대 XX의 어느 대학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는 구조, 학벌·학력주의에 의한 신분사회구조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필자에게 3월이 잔인한 달이라면 그것은 이 일사분란한 동일성의 구조, 구조의 동일성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은 정신적인 조로증(早老症)에 걸려 있는 듯하다. 유약해진 정신은 강한 것을 욕망한다. 위계질서적이고 서열화된 신분사회인 탓에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심리가 사회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우리의 경우, 약한 정신은 자기감정의 안전판 구실만 한다면 그 강한 것이 절대 권력이든 폭력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강자에게 약하다는 것은 그 강자에게서 자기의 도피처를 구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도피처를 구할 수 있는 한에서 강자의 폭력을 묵인하거나 수용한다는 말과 같다. 최근 우리사회를 전염시킨 조폭바이러스는 우리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메커니즘에서 면역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러한 메커니즘에 대한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만든 정신의 조로증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고도소비대중문화에 의해, 정보사회 탓에 기억의 안테나에 혼선이 빚어진 것일까, 아니면 논산훈련소같은 고등학교에서, 그 후 배치받은 군대같은 대학교에서 진학과 취업에 대한 공부 이외에 사회에 대한 기억을 깡그리 상실한 탓일까.
군대를 두고 또 하나의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군대가 사회와 단절된 공간이라는 뜻이고, 대학은 오늘날 사회와 단절된 또 하나의 군대로 변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학 안으로 무엇이 들어오든 잔인한 광경을 강건너 불구경 식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다. 3월은 매년 잔인한 계절이다. 변화없는 반복을 일사분란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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