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지옥' 탈출 007영화 방불

입력 2002-03-15 15:49:00

14일 주중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 난민 지위 및 한국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탈북자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이같은 망명을 시도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지상의 지옥'에서 탈출하기까지 손에 땀을 쥐게하는 이들의 행보를 되밟아보면 마치 007영화를 방불케할 정도다.

이번 거사는 지난해 6월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베이징(北京) 대표사무소에 망명을 신청, 받아들여짐으로써 시작됐다. 당시 탈북자 장길수씨 가족 7명이 베이징 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들어가 한국행을 요구, 4일만에 필리핀을 거쳐 서울로 입국한 경우와는 또 다른 경로를 밟았다. 주중 외국대사관 한 곳을 선택, 이번 일을 단행키로 결정했다. 탈북자들만으로는 애시당초 이번 거사가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 탈북자중 일부는 이미 식량과 자유를 찾기 위해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원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 수개월간 구금된 적도 있어 그만큼 신중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수립해야만했다.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하기까지 독일과 미국, 프랑스, 한국, 일본 등 국제 인권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철저하게 준비했다.

이들은 당초 주중 독일대사관으로의 진입을 계획했다. 하지만 13일 밤 독일대사관에 대한 경비가 유독 삼엄했다. 중국 당국이 사전에 관련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계획을 바꿔 상대적으로 경비가 허술한 스페인 대사관을 선택했다. 14일 오전 11시 탈북자들은 이들의 안내에 따라 야구 모자를 쓰는 등 관광객 차림에 관광버스로 현장까지 이동, 허술한 경비를 뚫고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했다.

이들을 도운 풀러첸 박사는 "탈북자들은 쥐약과 소규모의 농축 아편 뭉치들을 소지, 만약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할 경우 자살을 시도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망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자들은 어느 나라, 어느 대사관에서든 난민 신청을 하게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이번 일이 성공한 이상 조만간 다음 번 행동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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