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공적비와 선비정신

입력 2002-03-15 00:00:00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내에 세워졌던 특정인의 공적기사비는 15일 아침 이 일에 관여했던 일부 사림들의 자진철거로 일단락 됐다.

옛 사람들은 염치를 안다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염치란 자기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렀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을 아는 감정이다. 또한 염치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수서원내 특정인의 공적비 문제는 염치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추진됐고, 이 때문에 물의를 빚게 됐다.

역사나 개인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정당한 평가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훌륭한 공적을 쌓은 뜻을 기리고 후대에 귀감으로 삼고자 세우는 공적비도 검증과 공론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건립했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수서원내 특정인의 공적비 설치에 반발하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더구나 서원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모여서 명현들의 뜻을 받들어 그 덕망과 절의를 본 받고 배움을 익히던 곳이 아닌가.또한 이 공적비 설치와 철거까지의 과정에서 일부 유림들과 영주시가 보여준 처신과 태도도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우리(사림)가 관리하는 땅에 비 하나 못 세우느냐", "비를 못세우게 하면 소수서원 문을 닫겠다"는 식의 처신은 어른답지 못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청도 공적비가 설치된지 보름이 지나도록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고 유림들의 눈치만 보면서 부서간 책임미루기식 태도를 보여 문제를 자초했다.

선비의 고장이라는 영주. 요즘 지역에서는 선비의 정신을 이어받자고 막대한 예산으로 선비촌을 건립하고 있다. 선비는 모름지기 남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며, 그 본보기를 행함에 위선과 거짓이 없어야 된다. 이번 소수서원 공적비 설치와 철거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와 후손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선비다운 어른'의 모습이 아쉽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김진만기자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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