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농부가 이웃집에 당나귀를 빌리러 갔다. 주인은 당나귀를 빌려주기가 싫어 이렇게 말했다. '벌써 다른 사람이 빌려가고 없다네'. 바로 그때 공교롭게도 뒷마 당에서 히힝 하고 당나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나귀 소리를 들은 농부가 따지 듯이 말했다. '당나귀가 없다더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러자 당나귀 주 인이 궁색하게 대꾸했다. '자네는 마을 유지인 내 말을 믿는가 아니면 있지도 않 은 당나귀 소리를 믿는가?' 뻔히 들통날 거짓말도 일단은 변명이나 궤변으로 때우 려드는 세상사를 풍자한 우화다.
돈가스 판 돈으로 억대 가까운 정치자금을 대줬다는 소가 웃을 이야기에서도 대부 분의 사람들은 당나귀 빌리러 간 농부처럼 억장 막히는 심정을 느낄 것이다. 아무 리 내 말만 진실이요 당나귀 소리는 너희들 귀에만 들리는 환청이라고 우기며 권 력과 돈의 힘으로 꽁꽁 가리고 숨겨도 민심이 느끼고 감지하는 진실은 뒷마당의 당나귀 소리처럼 따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그리고 최근 들어 갖가지 게이트들의 비리가 터지면 서 우리는 너무도 빈번히 권력이 감추려 애쓰고 애쓰다 들통난 당나귀 소리들을 기막힌 심경으로 들어왔다. '맹세코 그런 일이 없었다'로 시작해 '기억이 안 난다 '를 거쳐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다'로 아둥바둥 버텨보다가 윗선에서 더이상 못 막아 준다 싶으면 결국 고개를 떨구고 잡혀가는, 판에 박인 화법(話法)을 수없 이 듣고 봐오는 동안 결국 온 나라 안에 독버섯처럼 퍼진 것은 총체적 '불신'이다.
지금까지 터진 게이트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 재수가 없었거나 인맥관리가 서툴 러서 터진 실핏줄 크기의 푼돈 자금줄일 뿐, 알짜배기 동맥 굵기의 목돈 자금줄은 건재할 거라는 불신.
아직도 수많은 당나귀들이 권력의 뒤뜰에 숨겨져 있을 것이고 다만 재수 좋게 울 지 않거나 못 울게끔 돈과 권력의 힘으로 재갈을 물려놓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신. 그런 불신과 의심이 대중들의 마음 속에 번져 있다면 그것은 의심하는 쪽보다는 당나귀 소리가 들리는데도 거짓말을 계속 해온 쪽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어느 시대나 권력자는 자신의 행위를 도덕적 이유나 종교, 애국심 때문에 그랬다 는 식으로 말(言)에다 가면을 씌우려 애쓴다고 한 하이네의 말처럼 정치권의 말들 에는 언제나 도덕적 이유나 애국심이 붙여지고 수식된다.
뒷돈을 대줄 때도 징징거려서 줬다며 동정심과 도덕성을 강조한다. 탈당하고, 의 원 꿔주고 경선 불복.포기할 때도 정치개혁과 나라와 민주발전을 위해서라는 애국 적 이유를 단다.
대권욕 때문이라거나 세가 불리해져서 빠진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뜬금없이 여권 국회의원 몇몇이 중심이 되어 끄집어낸 친일파 논란도 그렇다. 국회의원들이 제 할 일은 제대로 못하면서 광복회 같은데서 알아서 할 일인 친일 파 심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상한 짓거리도 굳이 불신하자면 엉뚱한 의심을 부 를 수도 있다.
현정권의 눈엣가시인 모 언론사의 창업주 두 사람과 영남권 정치세력에게 후광효 과를 주고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흠집내기 위한 것이 친일파 시비의 숨은 목적 이 아니냐는 의심과 불신이 그런거다.
불신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아태재단 전 임원 집 뒷마당에서 언론사 개혁 문건 , 인사청탁 문건, 정권 재창출 문건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우리는 아니오'라고 하는 한 이 정권 아래서 그런 불신이 사라지는걸 기대하긴 어렵다.
지금 그들의 귀에는 당나귀 소리가 안 들릴지도 모르고 숨겨둔 나머지 당나귀들은 절대 안 울거라고 믿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 이치는 그렇지 않다. '훔친 보석 은 보석함이 감춰주고 보석함은 다시 장롱 속에 감춰지고 장롱은 집안에 감춰지고 집은 자물통이 감춰주고 있지만 그것은 감춘 것이 못된다.
세상에는 그 자물통을 열 수 있는 민심이라는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엇을 무엇으로 감춘다는 말인가'. 장자(莊子)가 한 말이다. 그들이 계속 감추고 교묘한 말로 틀어막고 드러내지 않으려 발버둥칠수록 백성들 은 그들의 꿰맞춘 말보다는 당나귀 소리를 더 믿게 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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