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타계한 '걸레스님' 중광(重光) 화백은 '미치광이 중'을 자처했던 예인이다. 파계와 기행으로 승적을 박탈당한 뒤 유랑하면서 구상, 이외수, 천상병 등과 교유했으며, 선화(禪畵)에서 독보적 세계를 구축했다.
26세에 양산 통도사에서 출가, 득도했고 조계종 종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나 자신의 제사를 지내는 등의 기행으로 79년 10월 파문됐다. 그러나 선화의 영역에서 파격적 필치로 명성을 얻었고, 국내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구상.이외수.천상병 등과 교유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에 참석해 '나는 걸레'라는 자작시를 낭송한 후 '걸레스님'으로 불렸다. 79년 미국 버클리대 랭커스터 교수가 펴낸 책 〈광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으며 그로부터 '한국의 피카소'로 상찬받았다.
뉴욕의 록펠러재단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 대영박물관 등에 스님의 그림이 소장돼 있다.
스님은 막걸리통에 소주를 담아 벌컥벌컥 마시는 과도한 음주와 줄담배로 5년여전부터 건강을 잃었다. 김수용 감독의 '허튼 소리', 이두용 감독의 '청송으로 가는길' 등의 영화에도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한국의 피카소' 외쳐 높이 평가
건강이 쇠하자 98년 강원도 백담사로 들어가 선수행하며 달마그림에 몰두했다.백담사의 오현(五鉉) 스님으로부터 '바위처럼 벙어리가 되라'는 뜻의 '농암'(聾庵)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허튼 소리 하지 마라'는 뜻에서다. 스님은 2000년 곤지암에 너와지붕을 얹은 토막집 '벙어리 절간'을 짓고 들어앉았다.
그리고 작년 5년만에 처음으로 '괜히 왔다 간다'는 주제로, 마지막 전시회가 된 달마그림 전시회를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열었다.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는 말을 되뇌던 스님은 불구자와 창녀들 틈에서 지내다 '속박에서 벗어나라'는 해골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만년에는 '바람'을 화두로 정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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