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생인 타흐신 바쉬르는 알렉산드리아 상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유학한 후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특히 미국유학시절인 1950년대 초에 최초로 미국 유학중인 아랍학생들을 대표한 기구를 주도적으로 조직하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게 됐다.
나세르혁명(1952년) 3년 후인 1955년 아랍학생기구는 이집트에서의 혁명을 지지한다는 공식입장과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 법치주의로의 개혁을 동시에 주장했다.
미국에서 쌓은 인맥과 학문적 배경을 인정한 나세르정부에 의해 유엔대표의 대변인을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나세르 대통령 대변인, 나세르 사후에는 사다트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일했다.
또한 아랍동맹의 이집트대표를 끝으로 사다트시대를 마감하고 무바라크정부하에서는 캐나다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그는 카이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중동학 강의와 저술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지금도 사다트 대통령의 공적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이 맺어지기 전 최초의 평화협상의 대변인으로 협상을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사다트 대통령의 대변인시절, 대통령의 면전에서 친인척들의 부패상을 비판해 바로 그 자리에서 해임된 경력을 갖고 있는 그는 청렴결백한 정치인의 표상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현정권을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의 합리적인 판단과 견해를 존중하는 이집트정부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필자가 방문했던 30평정도 되는 그의 아파트는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실 그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이집트의 현대역사이자 기록이었다.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처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동분쟁의 해결책, 이집트의 가난을 극복하는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낯선 이방인에게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자신의 여생을 조국 이집트를 위해 송두리째 바치려는 듯 지금도 그는 평생의 습관인 하루 4시간씩의 수면만을 취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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