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이 판을 치는 한국영화에 식상한 영화팬들을 위한 특별한 사랑얘기 두 편이 봄을 '노크'했다.
'생활의 발견'(22일 개봉)
'생활'과 '발견'…. 전혀 어울리지 않을 단어의 어울림이 재밌다. 감독은 하찮고 나른하며 구질구질하기까지 한 일상에서 뭘 발견했다는 걸까. 완벽한 '홍상수 표' 멜로영화.
극중 배우 경수(김상경 분)는 출연하려던 영화사가 망하자 러닝 개런티를 챙겨 춘천에 내려왔다 선배가 맘에 둔 무용수 명숙(예지원 분)을 만난다. 퀴퀴한 선술집 골방, 선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술에 취한 명숙이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요" 추파를 던지고, 둘은 하룻밤 동침을 한다.
경수는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말해봐요" 라고 매달리는 명숙에게 "미친년"이라고 쏘아붙이지만, 경주로 가는 기찻간에서 만난 유부녀 선영(추상미 분)에게 또다시 맘을 뺏긴다.
사랑을 원치 않았던 여자에게 듣는 사랑한다는 말만큼이나 경수가 어린애처럼 돌진하며 내뱉는 사랑한다는 의사표시도 황당하고 우습다. 처음 만난 여자의 집까지 따라가 전화번호를 달라고 떼를 쓰는 경수나,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 번호를 불러주는 선영이나 가관이다.
쫓기고 쫓는 사랑이지만 경수는 우연히도 두 여자에게서 똑같은 쪽지를 받는다. '내 속의 당신, 당신 속의 나'라고 적힌….
'생활의 발견'은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감독이 그날 촬영분의 대사를 그날 아침에 배우들에게 만들어 건네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화같지 않은 사랑'얘기를 묘사하는데 당분간 홍상수 감독의 탁월한 감각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버스, 정류장'(8일개봉)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 무관심하며 스쳐가는 버스 정류장. 그곳에서 남자와 소녀가 만났고, 마침내 떠났다.
서른 두살 학원강사 재섭(김태우)은 속물스런 세상이 지겨워 견딜 수 없다. 학원동료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자초하고, 스스로 만든 고치속에 자신을 웅크린다. 어느 날 그의 반에 원조교제를 하는 열일곱살 여고생 소희(김민정 분)가 학원생으로 등록한다. 세상에 냉소적인 둘은 서로를, 서로의 상처를 금세 알아챈다.
"우리 거짓말 게임할래요?" 어느날 밤 재섭의 자취방을 찾은 소희는 당돌한 제의를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자고 해놓고 진심을 털어놓는다. 상처뿐인 가족, 몸을 원하는 어른들의 적나라한 얘기…. 그런 소희가 안쓰러운 재섭도 창밖을 보며 독백을 한다. "나는 어른들이 싫어요…".
소희가 잠이 들고 '진한 장면'이 연출될 법도 한데 재섭은 밋밋하게 이불을 덮어주며 마음을 감춘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려던 재섭은 우연히 어두운 밤 버스 정류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소희를 발견한다. 서로 동정하거나 결코 감격하지도 않으면서, 둘은 함께 버스를 타고 물끄러미 사라진다. 두 사람이 따뜻하게 손을 잡고 내릴 다음 정류장은 어디일까.
'조용한 가족' '반칙왕'의 프로듀서를 맡아 모두 흥행시킨 이미연 감독의 데뷔작. '버스처럼 다가오는 여자와 정류장처럼 그 사랑을 기다리는 남자'라는 감독의 자평이 인상적이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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