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굿바이 '간판시대'

입력 2002-03-08 14:12:00

국내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순 국산' 경영학박사 3명이 최근 잇따라 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명문대 교수로 채용됐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모두 과기원(KAIST) 테크노대학원 출신. 해외대학들이 이들을 채용한 이유는 순전히 '학문적 성과'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인데 정작 국내대학들은 이들을 외면했다고 한다.

▲저명한 학술대회에서 최우수 논문으로 인정받았지만 유학파나 특정대학 출신을 우대하는 폐쇄적 교수사회의 두꺼운 벽에 토종간판은 번번이 쓴잔이었다는 고백이다. 이들은 1억여원의 연봉에다 주택 등 각종 혜택까지 덤으로 받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 점에서 비록 초등학교 학력뿐이지만 금속세공분야의 명장(名匠)을 신임교수로 채용한 홍익대학의 선택은 빛나는 것이었다. "어디서 공부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배웠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이 대학 총장의 말씀은 참으로 지당하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인사정책도 이미 학벌.학력주의에서 능력주의로 옮겨가고 있다. '신분상승의 확실한 지름길'이 명문대가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임을 기업들이 말하기 시작한 거다.

인터넷 취업사이트의 하나인 '잡링크'가 최근 400개 중견기업들의 '직원채용패턴 변화'를 조사해 봤더니 채용도 정기채용에서 수시공채(60%)로, 채용심사 우선순위에서도 외국어나 학력.전공을 밀어내고 경력(72%)이 완전히 자리잡고 있음을 나타냈다.

입사후 학벌과 인사고과에 상관관계가 있나를 봤더니, 삼성전자 입사 6년차이하 대상 조사에서 일류대.중위권대.기타대의 고과점수가 67~66점선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간판 아닌 능력만 탁월하면 이력서 한장으로 스카우트하는 세월이 온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과거처럼 틀에 박힌 모범답안은 들을 수가 없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든가 야구.골프선수, 성악가, 애니메이터 등 전문화된 직종을 읊어댄다.

다양성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놈(?)의 사(士)자만 쫓아가다가 이젠 농.공.상에 기(技)자, 예(藝)자, 체(體)자 등 온갖 분야가 수평적으로 각광받게 됐고, 목표만 '어느 분야에서건 일류'로 수정된 것이다.

대학생들도 간판보단 미래의 가능성을 선택하기 시작한 조짐이 있다. 서울대 신입생 미등록사태가 교육정책.입시제도의 결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으나 세상이 간판시대.사(士)자시대를 밀어내고 다양성의 시대를 맹렬히 인정해가고 있는 과정의 하나로 믿고 싶다.

아직도 연공서열과 연줄에 좌우되는 공무원사회가 숙제로 남아 있지만 그러나 그 '철밥통'도 한국행정연구원이 조사한 바, 공직자의 구비자질이 92년엔 책임감, 98년엔 능력, 2001년엔 바로 '전문성'으로 바뀌었다니 참 다행스럽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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