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번째 개인전 여는 신석필씨

입력 2002-03-04 14:09:00

"아직도 마음에 차지 않는 그림이 훨씬 많아요. 그런대로 봐 줄만한 작품은 삼분의 일 쯤이나 될까요".

1일 대구 송아당화랑에서 만난 원로화가 신석필(82)씨의 얘기는 너무 의외였다. 아홉살부터 붓을 잡기 시작, 70년 이상 화업에 열중했는데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말에 놀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작품을 완성한 후 벽에 걸어놓았다가 잘못된 부분이 나타나면 떼어내 다시 그립니다. 어떤 것은 며칠만에, 어떤 것은 1년만에 떼어내기도 하고…"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목소리는 힘에 차 있었고, 자세도 꼿꼿했다. 매번 그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의 힘과 정신은 젊은이 못지 않은 것 같아 좋아보였다. 그래서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빛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양이다.

그는 이곳에서 9일까지 자신의 35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었다. 그는 인물, 풍경을 즐겨 그리는 신구상 계열의 작가다. 추상과 사실의 극단을 오가면서 사물을 표현하는 폭넓은 화풍을 보여준다. 몇 사람의 얼굴이 한꺼번에 뒤섞여 있기도 하고, 사물의 테두리와 형체가 전혀 구분되지도 않는다.

젊을 때는 사실적인 작품을 그리다 60년대 후반부터 이미지가 해체된 작품을 그려왔다. "사실적인 그림 보다는 훨씬 매력적이죠.

조금만 생각하고 감상하면 훨씬 더 나은 느낌이 들 겁니다". 요즘들어 색감이 훨씬 약해졌다는 얘기를 듣지만, 그는 "나이가 들수록 색감이 부드러워지고 맑아지고 단순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50년 가까이 중구 남산동 자택에서만 작업해온 그는 화가란 모름지기 아뜰리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요즘도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작가는 구도자와 비슷하지요. 황무지를 개척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려면 단 한시간도 그림과 떨어져 지내면 안돼요".

그가 지역에서 손꼽히는 외국통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일본 대만 중국 등에 친숙한 화가들이 많고, 그들과 자주 교류전을 갖는다.

5년전부터 일본 원로화가 이노우에 추조와 매년 1월 1일 지바현에서 2인 전시회를 열고 있고, 오사카에서 발행되는 시동인지 '사구'의 표지 그림을 그리는 등 활발한 해외 활동을 하고 있다.

황해도 사리원을 고향으로 둔 그는 전쟁중 월남, 지난 51년 대구에 정착한 이후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그림만 그려왔다. "굶지 않고 즐겁게 그림만 그려온 제 인생에 무척 만족합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걸 쓰느라 그림 그릴 시간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다만 6.25전쟁 직전까지 일했던 평양국립미술학교에서 개인전을 한번 여는게 소원입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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