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모티즌'시대

입력 2002-03-02 00:00:00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 후반에 휴대전화가 등장했다. 처음 나온 것은 지금보다 두세 배나 덩치가 크고 무거웠지만'부(富)의 척도'에 다름없었으며, 부러운 시선을 거느렸다. 한 대를 장만하려면 수백만원이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집과 자동차에 이어 '재산 목록 3호'란 말도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부러움의 대상에서 제외된 건 물론 없는 사람이 되레 부끄러울 정도다. 우리나라의 가입자 수는 지난해 말에 이미 2천900만대를 넘어섰다니 2인당 1대 꼴은 가진 셈이다.

0..초등학생까지도 생일 선물로 휴대전화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세태가 됐으니 더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은 휴대전화가 예전엔 미쳐 상상도 못했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멀리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원래 기능과는 상관없이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고, 그 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지 않은가.

0..요즘 청소년들에게는 휴대전화 없는 하루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통화는 차치하더라도 계좌 조회 등 은행 업무를 보는 건 기본이다.

휴대전화로 무선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수강 신청, 성적 조회, 증명서 발급,도서 대출, 하숙.자취 정보 검색, 메일 읽기와 쓰기, 취업 정보 검색 등도 가능하다. 사진 주고 받기, 친구의 위치 찾기가 유행하고, 심지어는 자동판매기의 음료수까지 뽑아 먹을 수 있게 됐다.

0..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20, 30대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90%가 훨씬 넘고, 10대도 10명 중 8, 9명이 갖고 있다 한다.더욱 가관인 건 이들에게 휴대전화는 두드리면 뭐든지 나오는 '도깨비방망이'가 돼 가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 기기를 익숙하게 다루는사람을 일컫는 '모티즌'(모바일과 네티즌의 합성어)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또한 계속 늘어나는 모티즌들 때문에 정부 기관들마저 휴대전화를 통한 문자 정보 제공 등 대민 서비스도 확대하는 추세다.

0..그러나 이 기술문명의 그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휴대전화 중독자 뿐 아니라 이용자들의 예의를 저버린 행태가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공해 수위'에 이르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휴대전화는 조금도 기다리거나 참기를 싫어하고, 언제 어디서나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 할 정도로 삶의 양식을 바꿔놓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정신문화와 정서에는 '느림의 미학'이 미덕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 엄청난 위력의 조그마한 '도깨비방망이'가 두려워 지기도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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