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한달쯤 되었을 때 우리 집 위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차가 달려와 고가사다리를 타고는 소방관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가 쉽게 불을 껐다.
불과 삼십분만에 진화 작업이 끝났지만 그로 인해 받은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화재의 위험뿐 아니라 한 사람의 부주의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과 강박관념으로 밤에 자다가도 소방차 소리만 나면 벌떡 일어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소방차가 아파트로 들이닥친다. 놀라 뛰어나가보니 우리방 바로 위가 아닌가. 고가사다리를 타고 소방관이 들어가더니 밖을 향해서 별것 아니라는 신호를 한다.궁금해서 소방관에게 모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연기가 계속 나기 때문에 밑층에 있는 사람이 화재신고를 했다고 하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곰국을 끓이다가 가스불을 끄지 않고 주부가 외출해서 곰국 건더기가 타느라 연기가 난 듯하다는 말을 하고는 맥이 풀린 목소리로 불을 겁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큰 일이라고 했다.
◈옷깃만 스쳐도 이웃
나는 아홉살 때 화재로 우리집이 불에 타는 바람에 헛간 같은 데서 몇달을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불을 보면 겁부터 난다. 그래서 가족들이 밖에 나가면 부엌에도 들어가 가스밸브가 잠겼는가 확인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손님이 왔다가면 담배꽁초가 제대로 꺼졌는가를 확인하곤 한다.
내 처남은 겨울에 연못에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지치다가 물에 빠져 옷을 버렸다. 그러자 철부지들이 불을 놓고 옷을 말리다가 솜바지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었다. 그 때는 시골에 약국도 없고 병원도 없어 약초를 말린 가루를 바르고 민간요법으로 치료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화상이 악화되어 재수술까지 받았어도 아직 그 상처가 남아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아파트에 살아도 남이라고 여겼는데 화재 사건 이후로는 남이 아니라 운명공동체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쓰레기가 쌓여도 그 악취를 같이 맡아야 하고 온수시설이 낡아서 고장이 잦으면 같이 의논해서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
◈따뜻한 사랑 나누자
곰곰이 따져보면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먹는 음식은 농민이 정성껏 생산한 것들이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느 노무자가 짠 것이고 내가 신고 있는 양말과 구두는 기술자들이 만든 것이고 내가 즐겨보는 텔레비전이나 소식을 전해주는 전화도 다 낯모르는 이들이 만든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수고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어금니가 썩어서 치과에 다니고 있는데 의사선생님이 아니면 그 통증을 견디지 못하여 몸부림을 칠 것인데 한 쪽으로 음식을 씹어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고마운 줄도 모르고 대가를 치렀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대(일제시대)를 겪어봐서 그런지 모든 것이 다 고맙다고 생각되는데 요즘 아이들은 남이 해주면 고맙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트집을 잡고 불평만 늘어놓는다.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지금은 세계가 한 마을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프간의 난민도 지구 마을의 한 사람이고 탈북자도 단군의 피를 나눈 자손이다.그런데 조금 많이 가졌다고 하여 가진게 없는 이를 깔 본다든가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소년소녀 가장을 따돌림하는 일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온기가 있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마음 쓰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가는 것을 보면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길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지는 사람도 남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 아닐까.
정재호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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