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게임 함께 즐겨요

입력 2002-02-22 14:24:00

◈우리 맘 알아주는 엄마 캡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한두 시간 전. 김영희(41.달서구 성당동)씨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메일을 검색하고 웹 서핑을 잠시 하는가 싶더니, 게임을 띄웠다. 얼마전부터 초등학생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크레이지'였다.

"연습하는 거죠. 애들과 자주 함께 하는데 엄마는 잘 못한다며 같은 편을 안 하려고 해서요". 김씨가 끙끙거리며 서툰 솜씨를 닦고 있을 즈음, 조두환.언연(성당초 5년) 형제가 현관으로 뛰어들었다.

"어, 엄마 연습하고 계시네"라며 곧바로 PC 앞에 앉는 것은 아무래도 게임이 한 수 위인 둘째 언연이. 타닥타닥, 몇 판이나 했을까, 실력이 달리는 김씨는 손을 들고 말았다. 이번엔 두환이 차지.

그렇게 정확히 한시간이 지나자 김씨는 "시간 됐다"며 형제의 어깨를 쳤다. 그제서야 둘은 책가방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은뒤 숙제거리를 펴들었다. "애들은 게임을 하고 싶어서 못 살아요. 하루에 한 시간, 주말엔 두 시간만 게임을 하기로 약속했죠".

지난 98년 복지관 강좌를 들으며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까지 딴 김씨지만 게임 쪽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는 아줌마.

특히 3년전두환이가 뇌종양 판정을 받아 1년반 동안 몇번의 수술을 거치느라 언연이는 그 기간 동안 거의 혼자 생활했다. 밝은 성격이라 큰 문제는 없었지만 게임 실력이 엄청 늘어난 게 가장 큰 골칫거리.

두환이가 완쾌된 뒤 걱정 반 미안함 반에 김씨가 생각한 게 게임 같이 하기였다. "어휴, 그걸 그렇게 움직이면 어떡해요" "여기선 이렇게 해야죠".

늘 투덜거리지만 엄마와 함께 게임을 하는 언연이는 자신이 가장 즐기는 것을 함께 해주는 엄마의 모습에 너무나 행복해했다는 것. "지난달 두환이 후유증 치료차 서울에 간 김에 애들 사촌과 명동 미지센터 인터넷룸에서 편을 갈라 게임을 했어요.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함께 하는 엄마가 같이 하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걸 보고 이젠 됐구나 싶었습니다".요즘 김씨가 신경쓰는 건 폭력성이 초등학생 수위를 넘고 중독성이 강한 게임.

디아블로,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은 못 하도록하지만 게임사 홈페이지에서 쿠폰을 다운받아 이따금씩 하는 건 눈감아준다. 전혀 못하게 되면 친구들에게서 따돌릴 정도로 초등학생들의 게임 열풍이 심각하기 때문.

그러나 월 정액권을 사서 매일처럼 하는 건 철저하게 단속했다. 언연이는 얼마전 동네 형에게 부탁해서 꼬깃꼬깃 모은 용돈으로 리니지 정액권을 끊으려다 들켜 혼나기도 했다.

"PC방에 가서 하는 게 훨씬 재미있는데 어떡해요"라며투덜거리던 언연이는 "그래도 엄마 몰래 PC방에 여섯번이나 갔어요"라고 히죽 웃었다.

"신문에 나는 게임 정보를 유심히 살피고, 동네 고교생들에게 몇번이나 물어본 덕분에 애들이 하는 게임은 거의 알고 있지만 언제 또 새로운 게임이 나올지 몰라 걱정"이라는 김씨는 어찌보면 학부모 가운데는 상당히 앞서가는 경우다.

아직도 PC를 거실에 내놓고,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 정도 깔아놓은 뒤 이따금씩 잔소리만 하면 되는 걸로생각하는 부모들에겐 한번쯤 주목해야할 아줌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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