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난장판 국회

입력 2002-02-20 00:00:00

국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발단은 민주당 송석찬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통해 부시 미 대통령을 '악의 화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악의 뿌리'라고 발언하면서 비롯됐다. 흥분한 한나라당 몇몇 의원들이 몰려 나와 발언중인 송 의원의 원고를 빼앗고 단상에서 멱살잡이를 벌인뒤 집단 퇴장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대통령 가족관련 폭로에 고함치던 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의 발언 저지에 흥분했다.

이만섭 의장은 "국회생활 40년동안 법안 날치기통과 때 의원을 저지하는 경우는 있어도 연설중인 의원을 밀어낸 경우는 없었다"고 난처해 했다. 송 의원의 발언 후 여당을 성토하기 위해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는 "의원의 질의는 어떤 이유로도 방해받아서는 안된다"는 자성적 발언도 나왔다.

다음날 여야 총무는 국회 속개를 위한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서로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상대당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정치와 정당개혁을 외치며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총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던 여야 의원들이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총재에 대한 충성심을 너도나도 다투어 과시했다. 대통령과 총재의 가족 이른바 '로열 패밀리'에 대한 비난에는 돌격대로 나서는 게 당연하다는 투였다.

국회속개를 거부한 민주당을 향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통령 가족 관련 의혹에 대한 답변이 궁해서 일 것"이라고 민주당을 공격했고 민주당은 "이 총재와 가족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가 부담스런 한나라당이 계속 이같은 행위를 반복할 것"이라며 선 사과를 요구했다.

이번 국회파행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려되던 결과였다. 19일 오후 국회는 야당 단독으로 열렸으나 여야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이번에는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이 "김대중 정권은 김정일 정권의 홍위병"이라고 발언, 감정 싸움의 도는 더욱 심해졌다.

여야 의원들의 싸움판 속에 유력한 다음 대통령 후보들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두렵기만 하다. 국민들이 정치권을 향해서 손사래를 치면서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박진흥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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