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과 신학기 시작을 앞두고 자녀의 대학 학자금 마련으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농가소득은 제자리지만 등록금과 물가는 계속 올라 수백만원대의 등록금을 비롯, 유학비 등을 포함하면 1천만원대에 이르는 자녀 학자금 때문에 논밭을 팔거나 높은 이자의 사채에 기대야 할 형편이다.
또 농협과 금융기관 등이 저금리 학자금을 빌려주지만 IMF이후 금융기관 신용불량자가 크게 는 것도 사채의존도를 높이는 한 이유가 되고 있다.
◇돈을 구하라=영양군 청기면 기포리 권형직(48)씨는 사채를 쓸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큰 아들이 올해 서울지역 사립대에 합격했지만 기쁨도 잠시, 등록금과 생활비 등 학기당 적어도 1천여만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권씨는 "농협의 학자금 대출도 우선 등록금을 납부한 뒤 그 서류를 첨부해야 신청할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얻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0만원의 사채를 낸 백순흠(48.청송군 청송읍)씨는 "동네 다른 사람은 청송읍의 사채업자로부터 200만원을 3개월간 사용하는 조건으로 50만~60만원의 높은 이자를 주었다"며 자신은 30만원에 빌린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박모(46.청송읍)씨도 "금융기관에 불량 거래자로 등록돼 아들의 등록금을 대출받지 못해 10% 이자의 사채를 300만원이나 빌렸다"고 말했다.
◇늘어난 신용불량자들 = IMF 뒤 빚보증이나 각종 카드사용에 따른 신용불량자가 크게 늘었다. 대부분 시.군의 농협마다 비슷한 사정이다.
영천농협의 경우 한사람이 많게는 3~4건씩 신용불량으로 등록돼 현재 400여명에 이르는 등 11개 농.축협을 합치면 그 숫자는 수천명쯤 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했다. 청송.진보.남청송농협 역시 IMF전 10여명의 신용불량자들이 지금은 100여명에 이를 정도 늘었고 농협청송지부에만도 200여명이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농협김천지부에도 200명이 넘는 신용불량농민이 등록돼 있다고 한 간부는 전했다. IMF전보다 비교안될 만큼 늘어났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농협돈은 그림의 떡 = 돈가뭄이 들자 농민들의 농협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현재 경북도내에선 모두 24억여원의 학자금 대출신청이 접수됐다. 의성지역 각 농협의 95명 2억3천만원을 비롯, 영덕농협 13건, 영덕 남정농협 3건, 상주 4건 등 지역마다 학자금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농협중앙회가 전국에 2천억원을 지원하고 전국 각 회원농협들도 1천억원을 마련해두고 있지만 자격과 절차가 까다로워 '생색내기용'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농협경북본부는 중앙회로부터 올해 도내 13만여명의 대학생 중 4천명의 추천서를 배정받았다. 경북본부 유계하 여신관리과장은 "전체 대학생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지만 중앙회 방침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의 신동석(45)씨는 "농협 학자금 대출은 보증인과 담보가 필요하고 더구나 신용불량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농협이 학자금을 대출하는지 조차 모르는 농민들도 많다"고 했다.
게다가 대출시기도 학자금 수요가 지나서 이뤄져 청송 4개농협의 경우 읍면 14개 영농회를 통해 자금신청을 받고 있으나 4월쯤 대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돼 농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청송농협 정책대부계 김명희씨는 "지난해는 2월 중순까지 40여명에게 1억2천만원의 학자금을 대출했으나 올해는 아직 대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때문에 청송농민들은 무이자로 200만~300만원의 학자금을 쓴 15명의 청송군청 공무원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농협 학자금 쓰기가 쉽지 않다는 농민들의 불만이 높자 영양농협은 올해부터 학자금 대출절차를 바꿔 영수증이 아닌 납입고지서를 첨부하면 대출이 가능하도록 했고 군위농협은 이사회를 통해 무보증 학자금 대출을 결의하기도 했다.
◇농촌의 돈가뭄=이처럼 농촌이 학자금 가뭄에 시달리는 것은 주요 소득원인 쌀값하락 등 갈수록 농촌 경제사정이 악화되는 데 반해 영농에 필요한 물품구입 비용부담 증가와 물가.교육비가 오르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 국립대와 교대 등의 대학등록금을 지난해 보다 5% 인상했으며 지난 10년간의 등록금 평균 인상률이 9%가 넘었던 주요 사립대 역시 올해 6~9% 인상했다. 또 하숙비 등 생활비 역시 만만찮아 농민들의 주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빚으로 자녀 교육을 시켜야 하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김경돈.이희대.서종일.엄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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