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睡眠과 壽命

입력 2002-02-16 15:17:00

조선조 세종(世宗) 때 판중추부사를 지낸 민대생(閔大生)이 90세가 되던 해 정월 초하룻날 세배를 받으며나눈 덕담(德談) 일화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한 사람이 절을 하며 "백세향수(百歲享壽) 하십시오"라고 하자 그는 "십년밖에 더 살지 말라는 말이냐"며 벌컥 화를 냈다.

눈치 챈 그 다음 사람이 "백세향수 하시고 또 다시 백세향수 하십시오"라고 하자 그제서야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그래, 수(壽)를 올리려면 그렇게 해야 도리지"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지도 모른다. 수천년을 산다는 전설 속의 백발 성성한 산신령은과연 어떤 장수 비결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우리 민담(民譚)에 나오는 산신령들은 한결같이 여자와 함께 살았다는 경우가 없다.아마도 색(色)을 멀리 해야 오래 산다고 믿는 게 동양의 장수관(長壽觀)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장수 비결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공자(孔子)는 일찍이 "잠자리(寢處)를 아무 때나 하고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며, 근로(勤勞)와 안일(安逸)이 도에 지나치면 병(病)이 한꺼번에 몰려 와서 죽는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한다.이 경고 가운데 잠자리를 아무 때나 하지 말라는 것은 남자의 경우 여자를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도 있겠지만, 잠을 너무 자지 말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수면은 건강과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건 현대의학도 다각적으로 밝히고 있는 바다.

▲최근 미국에서 하루 평균 7시간 잠자면 가장 적절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다. 캘리포니아대 대니얼 크립케 교수 연구진은 8시간 이상 잠자는 사람들은 6시간30분~7시간30분 잠자는 사람들보다 6년 뒤사망했을 확률이 15% 더 높다고 밝혔다. 하루 평균 8시간 수면이 적당하다는 기존의 주장을 뒤엎으며, 잠꾸러기들에게 경종을 울린 셈이다. 이 연구진은 또 하루 4~5시간 이하 잠자는 사람들의 사망 확률 역시 15% 가량 높다고 밝히고 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일지춘심(一枝春心)을자규(子規)야 알냐마는/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어느듯 봄이 저만큼 다가오고 있어 문득 이조년(李兆年)의 시조 '다정가(多情歌)'가 떠오른다.

세상사의 이런 저런 정한과 미움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고문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게 불면과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적절하게 단잠을 잘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개인적인 자제력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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