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노조의 사회 책임

입력 2002-02-14 00:00:00

올해 우리나라의 노사(勞使)관계는 어느때 보다 많은 압박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와 월드컵대회 개최 등 사회적인 상황은 사용자와 노동계간의 협상여건이 종전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가파른대립이 예고된 상태다.

노동계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월드컵 개최기간 노사관계의 정상적인 틀을 깨지않는 산업현장의 평화를 유지하는 쪽으로 정리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조치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지방,대선(大選) 등 양대선거는 노동계가 더 많은 것을 쟁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기때문에 올해 한국의 노동현장은 더욱 전투적일는지 모른다.

◈兩大선거 강경대응 우려

한국 노동운동사는 '전투'와 '저항'으로 표현할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산물이다. 노동관계법은 선진국 수준이었으나 운용(運用)은 근로자들의 의사와는 반대로 간 경우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80년대 후반까지는노사관계가 늘 대화부족 상태를 면치 못했다.

어느 일방의 굴복을 요구하는 전략·전술적 대치는 계속됐었고 정부쪽의'공작(工作)'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전태일 분신, 위장취업 등 뼈아픈 역사도 가진게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이다.현재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상황의 역전으로 봐도 무방하다.

노조가 과거처럼 종속적인 위치는 더욱 아니고 정치 영향력도 종전과는 비교도 안된다. 구미나 포항지역 근로자들이 선거때 발휘하는 표(票)의 결집력은 예상을 뛰어 넘는다.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인 '근로자들의 위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소위 거물정치인이 떨어질 정도로 새로운 변화의 길을 열었다. 가장 큰 변화는 노사협상에서 노조가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3공화국이나 5공화국 등에서는 상상도 할 수없는 변화다. 사용자측의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일 정도다. 노사관계에 있어 노조우위, 사용자 열세라는 불균형 지적도 나온다. 87년이후 계속되는 현상이다.

어쨌거나 한국 노사관계는 '신사적인 불문율'이 없다는게 문제다. 사용자는 노동자를 경제적 파트너로 인정하기를 지금도 주저한다. 쟁의나 쟁의행위가 발생하면 자기식구를 법정에 세우는 일도 드문 것이 아니라 다반사(茶飯事)다. 노조를 적대적 방식으로 대응해 대립적 노사관계의 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노조도 반성할 대목이 더러 있다.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투쟁방식'을 지금도 국민들이 수긍하는지 돌아봐야 한다.전투적, 저항적 방식이 이 시대에 맞는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노조는 이제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로 동정받는 대상이 아니다. 노조도 주요 사회 세력이다.

◈투쟁만이 능사는 아니다

세계의 노조가 변한다. 일본 최대의 노조연합단체인 일본노동조합 총연합회(렌고)는 올해 춘투(春鬪)와 관련해 사상 처음으로 임금인상을 보류하고 일을 서로 나눠갖는 '워크 셰어링(Work Sharing)'제도 도입을 결정했다고 한다. 경기침체에 따른 구조조정을 감안한 대응이지만 새로운 모습이다.

지난 82년 네덜란드 노사가 맺은 '바세나르(Wassenaar)협약'은 세계노동운동에 새로운 장(章)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조가 생산성 증가를 초과하는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사용자는 이에대해 법정노동시간을 주당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줄여 고용안정에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화답(和答)한게 '바세나르협약'이다. 이 약속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당시 노조를 대표한 '윔 콕(Wim Kok)'은 93년 총리에 당선돼 2001년까지 집권했다.

'바세나르협약'이후 일자리도 크게 늘어났다. 지금도 네덜란드 TV에서는 일자리를 떠난 국민들을 대상으로 직장으로 돌아오라는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적절한 협상의 상승효과를 보여주는 예시다.

"나는 모든 노동투쟁은 좋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 전투적 노동운동가들에게 전적인 동의를 하지 않는다. 이제는 경영진과 건설적인 대화를 추구해야 할 때이며 전투적인 행동보다 협상이 훨씬 더 생산적이며 효과적일 수 있다".

프랑스 여성 노동지도자 '니콜 노타(Nicole Notat)'의 말은 앞으로 한국노동운동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示唆) 한다. 우리나라 노조도 이제사회안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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