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인 카이로의 '칸 칼릴리'는 밤이 깊어가면서도 여전히 수많은 인파들로 채워져 있다.
바로 몇 발자국 건너편에 있는, 이슬람세계에서 4대 성지로 일컬음받는 모스크인 알 아자할의 고요한 분위기와는 대조를 이룬다. 시장일대는 상점들과 카페들이 관광객들을 겨냥하여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으며 카페들이 있는 골목은 탁자와 의자가 골목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탓에 사람이 사람에 떠밀려갈 정도로 북적거린다.
그러나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차(茶)배달꾼 소년들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뚫고 아주 익숙한 솜씨로 차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사히 배달해내는 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이 골목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차를 마시면서 토론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이 근방에서 가장 소문난 카페는 역시 '엘 피샤위'이다. 엘 피샤위는 120년의 역사와 함께 많은 문인들이 찾는 소위 '문학카페'로 유명하다. 특히 주인인 디아 엘 피샤위는 "나기브 마푸즈(아랍세계의 유일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즐겨 찾는 카페"라면서 자신의 카페에대한 자랑이 대단했다.
필자가 옆 좌석에 앉았던 한 건축가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한 소녀의 손에 몸을 의지하고 있던 한 장님시인이 사람들 앞에서 시를 즉흥적으로 낭송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화를 멈추고 이 장님시인에게 귀와 시선을 집중하였다. 잠시 후 시끌벅적하던 카페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가 읊었던 시는 11세기의 낭만시로 앉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떠난 아침 / 우리는 다가올 부재(不在)의 슬픔으로 충만하여/ 이별을 말했소. 낙타등에 실려진 팔란퀸(바구니)속 /금색 베일 뒤에 숨겨진 /달과 같이 아름다운 그들의 얼굴을 보았소….' 시가 낭송되면서 중간 중간 사람들이 "야~아"라는 소리로 장단을 맞추면서 모두들 한데 어우러진다. 낭송이 끝나고 이어 소녀의 손에는 몇 푼의 동전이 쥐어졌다.
카페주인은 "시를 읊는다든지 노래를 부른다든지 하는 일은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꽤 수준높은 작품이 낭송될 때도 많으며 유명한 문인들도 가끔씩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집트를 비롯한 이슬람국가에서는 외국인들을 위한 큰 호텔을 제외하고 현지인들이 술집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유는 이슬람교의 '금주령'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처럼 밤만 되면 술집이나 디스코, 카바레의 휘황찬란한 선전간판이 기승을 부리는 모습을 이곳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술에 취한 사람들의 비틀거리는 모습이나 음주운전 등의 문제도 당연히 찾아볼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술집 대신 번창한 것이 바로 카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거리의 카페는 가격이 싸기 때문에 빈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것도 대중문화로 자리잡은 중요한 원인이 된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칸 칼릴리'를 벗어나 중심가의 다른 문학카페를 찾아갔다. 탈랍 합 광장에 있는 '엘 보스텐'이라는 이름의 카페인데 이곳도 문인들이 많이 모이기로 유명한 곳이다.
마침 이집트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 한 사람인 가멜 이브라힘(64)이 동료문인들과 함께 하블바블(아랍파이프)과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대작가지만 어떠한 높은 콧대도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서민적인 인상이었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지 그는 하블바블을 피우면서 연신 기침을 해댔다.
3부작 소설을 비롯하여 13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바 있는 그는 자신의 장편소설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지난 1970년 안와르 사다트가 정권을 잡은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스위스의 제네바로 망명을 떠나서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81년 무바라크 정권이 들어선 후에야 이집트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조국 이집트는 문학의 근원이다. 겸손하게도 그는 자신의 소설을 내세우기보다는 특히 아랍세계의 시문학을 높게 평가했다.
소설은 근대유럽에서 빌려왔지만 시는 오랜 역사 속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시문학이 발달한 원인이 "사막이라는 자연환경때문인지?"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시는 우리의 피속에 있는 것"이라는 말로 아랍시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카페의 실내에서는 코란의 독경소리가 라디오를 통해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코란의 독경소리를 가리키면서 "이집트인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두꺼운 코란을 완전히 외워서 암송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면서 코란암송이 시문학 발전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그와 문인들을 뒤로 남기고 자리를 떠난 후 모퉁이를 돌면서 마주친 고급스러운 카페 '리쉬'도 역시 좌석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붐볐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세워진 '나기브 마푸즈'의 초상화들이었다.
문 옆의 작은 탁자에서는 한 화가가 나기브 마푸즈의 얼굴을 열심히 화폭에 옮기고 있었다. 마치 문학을 그림으로 그려내려는 듯.
하영식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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