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너무 빨리 잊는 건 아닌지?

입력 2002-02-08 14:20:00

잊는다는 것, 잊을 수 있다는 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참으로 필요할 때가 많다. 특히 내가 떳떳하고 당당한데도 남에게 억울함이나 고통을 당했을 땐 용서하고 잊는다는 게 정신건강상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잊고 싶지만 잊지 말고 교훈으로 간직해야할 고통스러움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싶다. IMF체제라는 국가적 고통도 그 중 하나이며 아직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이웃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얼마전까지만도 파리의 백화점에 가면 우리 국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다. 여행길에 우연히 들린 것이라 믿고 싶지만 그게 아니라니….

일년에 여름 겨울 두 차례 열리는 파리의 백화점 바겐세일 기간을 이용해 소위 명품을 구입하러 온 우리 여행객이라는 말이다. 심지어 직접 가지 못하면 그곳 교민이나 유학생을 통해서라도 명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또한 태국의 골프장에는 우리의 골프애호가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고도 한다. 이유는 그곳에서의 경비가 제주도보다 훨씬 적게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부에서 제주도의 입장료도 낮춘다고 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의도된 바는 아니더라도 소비자의 실력행사가 성공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여행을 하고 싶지만 세무조사나 소득추적이 겁나서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하니 분명 잘못 전해지는 이야기라고 믿고 싶다.

납세의무는 물론이고 자기 손에 생계가 달린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최선의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그런 여행도 한다면 그들이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의 대가로 인정해 주는 것이 당연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무언가를 잊은 것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줬으면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의 속 좁은 이야기로 들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야겠다.

최외선(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