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데스크-배반과 배짱사이

입력 2002-02-06 15:04:00

97년 대선이후 '이인제 학습효과'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인제를 찍으니 이인제가 안되고 안됐으면 싶은 사람이 당선되더라"는 뜻으로 회자됐던 말이다.

다시 선거바람이 불어 이인제 의원이 유력한 여당 주자로 당당하게 달리고 있다. 경선 불복에 이은 대선 출마, 낙선에 이르는 짧은 기간 안에 그는 부동의 차세대 주자로 부상한 것이다.

이쯤되면 '이인제 학습효과'는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딴판이 된다."이인제처럼 해야 출세한다" 또는 "민주주의의 기본룰과 약속은 깨고 짓밟을수록 거물이 된다"는 뜻으로 변치된 것이다.

현실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인제 의원은 "당시 이회창 후보와 지지율이 너무 떨어져서…"로 시작하는 경선 불복에 대해 항변을 하지만 교과서를 고치지 않는 한 납득하기 어려운 궤변에 속할 뿐이다.

◈이인제 학습효과의 의미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인제 학습효과'는 이인제 이전부터 한국정계를 풍미해왔고 한국 사회의 불행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단적 이기심과 출세 지상주의적 사회풍토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수준이하의 능력과 양식을 수준 높은 연기로 커버하며 출세를 위해 항시 배반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런 용렬한 위인들이 득세하는 사회의 저변에 그런류의 학습효과가 깔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인제 학습효과'는 한국 현대정치가 오랜 세월을 두고 만들어낸 마키아벨리즘 아류의 정치기법 내지는 술수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70년대 벽두부터 40대 기수론을 기치로 든 야당의 정치 고수들이 수십년간 치고 받으면서 달구어온 입신양명의 정치기법의 결정판이 이인제식 경선불복이 아닐까.

조폭 영화처럼 땃벌떼가 맹약하던 이승만 정권때나, 히딩크 축구처럼 세월가는줄 모르고 파쟁 연습만 일삼던 장면 정권때는 교활한 기법보다는 무식하고 단순한 술수로 정치를 꾸려나갔던 편이다.

그러나 현대교육의 맛을 본 70년대 40대들은 달랐다. YS가 당시로는 깜짝 놀랄 일인 한국 초유의 대통령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치고나오자 DJ도 해보겠다고 어영부영 나서고 이철승도 한다리 걸치니 그 와중에 유진오가 튕겨나갔고 유진산 등 중진들은 구상유치라고 항거해봤지만 결국 뒷방으로 밀려나야 했다. 사실상의 배반의 장미는 이때부터 피기 시작했다.

후보 경선에서 DJ가 호남 동향 이철승의 지원으로 선두주자 YS에 극적인 역전승을 했다. 이철승은 YS를 밀어야 했지만 거부했고 DJ는 이철승을 배려하지 않았다. 잘 나가던 YS는 40대 기수론을 접었다. 그 이후 한국정치는 끊임없는 배반의 장미 발호속에 새로운 정치기법의 경연장이 됐다.

◈발호하는 배반의 장미

결국 한국정치의 기본 기법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부와 배신과 배짱'의 기법인 듯하다. 요컨대 "아부로 입문하고 배신으로 튀고 배짱으로 밀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정치 고수 대다수의 필수자산이며 이인제 학습효과도 여기에 속한다 할 것이다.또, YS가 걸핏하면 신의없고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비판하는 이회창 총재의 입신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할 것이다.

최근 활발히 움직이는 여타 대선예비주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그렇다. TV로 중계된 청문회에서 고함 좀 지르고 때론 감상적 질문을 던진 공로로 청문회 스타라는 상표를 갖게된 사람, 색깔에 무지하면서도 유리한 색깔엔 쉽게 변색하는 사람, 이미지 관리에 필요할 때만 말하고 진정 발언해야 할 땐 침묵하는 사람, 지역감정 덕분에 누워서 떡먹기 보다 쉽게 국회의원에 두어번 당선된 사람 등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들중에 경륜부족, 함량미달이 분명한데도 유력주자로 떠오른 사람도 있다. 결론적으로, 아부와 배신과 배짱의 정치기법을 잘 써먹고 있다고 보아 틀림없다.

선거는 이미 시작됐다.

중앙무대 뿐 아니라 지방정가, 지방선거에서도 아부와 배신과 배짱의 기법은 당연히 유효하다. 한번이라도 당적을 옮겼거나 입·탈당을 경험한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은 대부분 그런 부류에 속한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처음 당적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대선주자들도 마뜩찮은데 지방선거에도 당선을 위해 입·탈당을 밥먹듯 한 사람들이 다시 공천을 받아 출마한다면 아무리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고 축제라고 한들 국민들은 반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 환멸을 느끼다 못해 지쳐있는 국민들이지만 그래도 차기를 기대하며 선택의 여지가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현란한 기법보다 담백한 성심에 충만한 후보가 얼마나 출마하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선거가 국민 축제로 빛날지, 아니면 그들만의 이전투구로 전락할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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