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軍 '포항 민간인 학살' 진상 밝혀라

입력 2002-02-02 15:04:00

6·25전쟁 중 포항 옛 여남동 송계계곡에 모여있던 피란민 1천여명 중 상당수가 미국 해군의 무차별 함포 사격으로 집단 학살된 사실이 최근 뒤늦게 윤곽을 드러낸 것은 충격적이다.

99년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이 알려지면서 유족들이 이같은 사실을 증언했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묵살당했다가 영국 BBC 방송이 최근 한국전 관련 다큐멘터리 '모두 죽여라'(Kill Them All)라는 프로그램에 이같은 사실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새롭게 조명된 것은 우리 정부의 존재의의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이 노근리 사건에 비해 규모면에서 적지 않은데도 정부가 진상조사에 조차 나서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문제 덮기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미 해군이 양민임을 알고도 무차별 포격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든 억울한 죽음인 것만은 사실이다.

적국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도 범죄행위인데 우방국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면 죄가 더 무겁고 책임도 더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와 관련 '포항 함포사격 희생자 대책위'가 최근 국회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청원을 제기하고 정부에 진상규명을 공식요청했음에도 정부가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가 "이 사건에 대한 자료가 없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며 "현재로선 현장조사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은 무책임한 직무유기다. 정부는 포항 송계계곡 학살 사건 뿐 아니라 지금까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던 수십건의 6·25전쟁중 저질러진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철저한 진상 조사에 나서야 한다.

억울하게 희생된 국민과 가족들에게는 명예회복과 함께 충분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도 노근리 사건만으로 6·25전쟁중 한국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벗어나려 하지 말고 한국 정부와 공동으로 조사에 나서는 등 진상을 밝히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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