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다나카 외상 경질

입력 2002-01-30 12:13:00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29일 경솔한 발언과 튀는 행동으로 자민당 내부로 부터 거센 퇴임 압력을 받아온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을 전격 경질했다. 다나카 외상은 이날 심야에 고이즈미 총리에게 호출돼 경질통보를 받은 후 한때 사표 서명을 거부하는 등 또다시 튀는 행동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밤 총리관저에서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간사장 등과 회동을 갖고 '앙숙관계'인 다나카 외상, 노가미 요시지(野上義二) 외무성 사무차관을 동반 퇴진시키기로 합의하고 다나카 외상을 전화로 호출했다.

총리는 다나카 외상에게 "인사권을 맡겨달라"며 우회적으로 경질방침을 통보했으나 외상은 못알아 듣고 "누구에 대한 인사인가?"고 물었다. 총리는 "당신에 대한 인사이다. 사무차관도 포함해서"라고 대답했으나 다나카 외상은 여전히 말뜻을 못알아 듣고 "차관인사라면 나에게 맡겨달라"고 말했고 이에 총리는 "당신과 사무차관의 인사"라고 재차 상기시키는 등 촌극이 벌어졌다.

결국 다나카 외상은 "경질이냐?"고 전격적인 인사배경을 물었고, 총리는 "그렇다.당신을 경질한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이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이 다나카 외상에게 사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으나 다나카 외상은 "오늘은 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30일 새벽 1시쯤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외상과 사무차관의 대립이 다나카 외상 경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음을 밝히며 경질방침을 확정했다.이어 그는 "외상은 많은 공헌을 했다. 사태 타개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고심 끝에 내린 결단임을 강조했다.

이로써 일본 외무성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외교총수에 등극했던 다나카 외상은 고이즈미 제1기 내각에서 취임 9개월만에 가장 먼저 낙마하는 비운을 겪게됐다. 다나카는 일본을 방문한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지 않아 일본 정계를 들끓게 했으며, 일본 정부의 입장과 동떨어지게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에 불만을 표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주요 외빈들을 위한 리셉션에 뒤늦게 나타나는 외교적 결례도 다반사였고, 자신이 아끼는 반지를 분실했다며 비서관에게 반지를 사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 좌충우돌했다.

특히 최근 도쿄(東京)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재건회의의 특정 비정부기구(NGO) 불참압력의 실체를 둘러싸고 다나카 외상이 노가미 외무성 사무차관과 '집안싸움'을 벌이는 등 내부갈등을 외부에 표출한 것이 경질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다나카 외상의 후임에는 도쿄 아프가니스탄 재건회의 공동의장을 맡았던 오카다 사다코(緖方貞子) 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이 거론되고 있으며,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환경상의 외상 겸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또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고이즈미 총리가 당분간 외상을 겸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류승완 기자 ryusw@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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