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시.도로 가는 길-(5)구미공단을 부활시키자

입력 2002-01-29 14:33:00

고도성장 신화의 상징중 하나였던 구미공단이 쇠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구미공단은 전체 공단규모가 720만평(1~4단지)으로 세계적인 전자관련 집적화 산업단지다. 따라서 구미공단의 위축과 쇠퇴는 지역경제는 물론 국가경제의 손실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구미공단의 첨단화 및 구조 고도화는 국가정책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미공단의 실상은 어떤가. 국가경제에서 구미공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통계상으로 전성기로 꼽히던 70년대 후반~80년대 보다 쇠락하고 있는 요즘 비중이 더 높아진 것이다.

지난해 구미공단은 28조5천500억원 어치를 생산해 이 가운데 139억달러(약 18조700억원) 어치를 수출했다. 전국 수출물량의 9.2%, 경북 전체 수출의 85%에 해당한다. 특히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56억달러에 달해 우리 나라 전체 무역흑자의 58.9%를 차지했다. 우리 경제를 사실상 구미공단이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구미공단은 지난 90~94년까지 연평균 12.5%씩 성장했고 95년~2001년에도 연평균 18%의 고성장률을 유지했다. 통계상으론 구미공단의 사정이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많은 전문가들과 기업인들은 구미공단의 미래에 대해 우려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무얼까. 구미공단은 조성 초기부터 TV, 전화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저부가 전자부품 단지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동남아 등 기술후진국을 대상으로 높은 수출실적을 거둔 대부분의 주력 제품이 이미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에 접어들어 더이상 성장을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곽공순(47) 구미상의 신규사업개발팀장은 "전자산업도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가 세계적 추세이나 구미공단은 아직도 단품종 대량생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대기업 의존도도 너무 높다"고 구미공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해외시장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수출시장이 불안해지면 대기업과 계열화된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미공단도 첨단통신장비 및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유망 신제품들을 생산한다. 하지만 연구개발과 연계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이 아니라 단순조립 생산에 그치고 있다. 이것이 구미공단의 현주소다. 이에 따라 젊은 인재들이 구미공단에 제대로 충원되지 않고 있다. 구미공단 근로자의 평균 연령이 36세를 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미공단의 '쇠퇴원인'을 진단하면 발전전략이 나온다. 구미공단의 위기는 90년대 접어들면서 심화됐다. 정부가 경제분야에 시장논리를 주창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시장논리가 강조되자 과거 산업화 시기와 달리 지식기반 경제의 속성상 사회.경제.문화적 기반시설이 집중된 서울과 수도권으로 돈과 사람이 몰린 것이다.

"구미공단을 되살리기 위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제4단지 조성사업과 구미테크노폴리스 건설의 성패는 국가전략 차원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기업 생태환경을 강화하기 위해 중소기업 및 벤처를 육성.지원하고 산.학.연 협력사업을 추진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석희(47)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구미공단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잘라 말했다. 지자체와 정치권, 지역민 모두 구미공단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관점에서 구미공단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구미공단의 문제는 대구의 과제이기도 하다. 왜 그런가. 김관용(61) 구미시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구미공단은 지역의 핵심 수출기지이나 물류기능이 취약한 단점이 있습니다. 물류기능 보완에 대구공항이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대구공항의 물류기능을 대폭 확대한다면 구미공단의 생산품을 중국.동남아 등지로 직수출할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입니다. 대구~구미간 경부고속도로가 8차로로 확장되면 25분 거리밖에 안됩니다". 김 시장은 "구미공단이 대구와 구미, 두 도시에 함께 혜택을 주는 '상생(相生)의 공단'이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구미공단을 되살릴 길은 우수한 인재들을 얼마나 유치하느냐에 달려있다. 정부와 구미시는 우수 연구.개발인력을 수용하기 위해 구미테크노폴리스에 '인텔리전트 빌리지'를 건설키로 했다. 또 대전에서 구미로 고속철 지선을 뽑아 구미~서울간을 1시간50분만에 주파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이것만으로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없다.

교육과 문화인프라까지 갖춰야 한다. 하지만 구미 독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결국 대구와 교육.문화.레저 등 각종 도시인프라를 공유해야만 한다. 이와 함께 우수 인재 유인을 위한 국책연구소 유치도 필요하다. 대구~구미 라인에 첨단연구소와 우수인재들이 모여 있다면 지역 경제에 활력을 주고 지역대학의 경쟁력도 함께 높일 수 있다.

특히 이렇게 모인 우수 인재들이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벤처창업을 활발히 해나갈 경우 대구~구미는 대기업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가진 탄탄한 벤처.중소기업 생태계를 갖게 된다.

구미공단의 과제는 경북도나 구미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대구.경북과 나아가 국가경제의 미래에 관한 과제다. 구미공단 첨단화의 해법을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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