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을 보여주지 않고 달아오르는 석탄난로바깥에는 소리 없이 내리는 눈
철길 위의 기관차는 어깨를 들썩이며
철없이 철없이 운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사랑하는 거니?
울어야 네 슬픔으로 꼬인 내장 보여줄 수 있다는 거니?
때로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단 한 번 목숨을 걸 때가 있는 거다
침묵 속에도 뜨거운 혓바닥이 있고
저 내리는 헛것 같은 눈, 아무것도 아닌 저것도 눈송이 하나 하나는
제각기 상처 덩어리다, 야물게 움켜진 주먹이거나
-안도현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열정적인 연애시이다. 역 대합실 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눈발 속을 달리는 기관차를 보며 사물에다 감정을 넣어 시인은 애인에게 뜨거운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읽는 이의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시의 전형이다.
'때로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단 한 번 목숨을 걸 때'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사실은 시적 화자에게는 우주가 되고 삶의 전부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단순한 연애시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김용락〈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