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뭐길래

입력 2002-01-26 14:18:00

25일 대구시내 한 취업알선기관. 이 곳에서 만난 30대 고졸 구직희망자는 '컴퓨터'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관리직에 취업하고 싶지만 컴퓨터 다루는 실력이 형편없어 뽑아주려는 회사가 드물다는 것.

"옛날엔 전자계산기 두드리며 했는데 요즘엔 복잡한 계산은 물론 결과 보고서까지 자동으로 만들어지더군요. 배우려해도 잘 와닿지가 않아요" 이 남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컴퓨터 만능시대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은 취업에서 우대받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임금 프리미엄을 보장받는다.앞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유일한 직종 가운데 하나로 IT업종을 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컴퓨터가 가장 빠른 속도로 산업재해를 증가시키며 '직업병의 근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IT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신(新) 산업혁명시대, 컴퓨터의 두얼굴을 짚어본다.

▨컴퓨터는 만능열쇠

컴맹은 괴롭다. 문서 하나 만드는데도 땀을 빼는 컴맹. 그들은 직장에서 좌불안석이다. 정리해고의 태풍앞에줄줄이 전사한 동료들을 기억하는 컴맹 직장인들은 불안감이 더욱 심하다.사기업체 근로자 뿐만 아니라 요즘엔 '철밥통'이라 불리던 공무원들까지 컴퓨터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컴퓨터 자격증 시험에 수차례 낙방했다는 한 50대 공무원은 '못따라가니까 환장하겠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최근 행정기관들은 승진과 보직배치 등에서 컴퓨터 자격증 취득여부를 중요한 결정자료로 보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전병유박사가 최근 전국 456곳의 사업장 2천5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컴퓨터사용과 임금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은 컴맹들에 비해 임금수준이 평균 3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컴퓨터 사용여부 자체가 약 30%의 임금 프리미엄을 갖고 있으며 인적 특성을 고려할 경우, 11~15%, 여타 직무특성 및 기업특성까지 고려하면 약 8~11%의 임금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

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 중앙고용정보원이 최근 IT직업 종사자 2천118명을 상대로 33개 IT직업 종사자 1천700여명의임금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33개 직업의 평균 연봉은 2천284만원(지난해 10월기준)으로 전체 근로자 평균 임금 2천1만원보다 14.1%(약 283만원)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IT직업종사자들은 '5년뒤 일자리 변화 전망'을 묻자, 응답자 84.9% 가 앞으로 5년간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응답해 IT산업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나가고 있는 미국도 '노동통계국(BLS)'의 '직업전망서(OOH)'를 통해 '임금이 가장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 산업'과 '새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 '향후 10년내 성장직업' 분야에 컴퓨터 관련업을 포함했다.노동연구원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컴퓨터 관련 직업훈련을 대대적으로 확대했으나 성과측정은 제대로 되지 않은 실정"이라며

"고임금계층보다는 저임금계통에서 컴퓨터 사용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이 높게 나타난만큼 저임계층을 상대로 한 컴퓨터 직업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해야 임금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컴퓨터와 직업병

중소기업체 총무과에서 일하는 박모(32.여)씨는 하루종일 컴퓨터 앞을 벗어나지 못한다. 거래처에서 날아온 전자우편을확인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하는 박씨는 컴퓨터 모니터만 보다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박씨는 자판을 많이 두드려야하는 문서작업이 몰리는 날엔 관절이 꽤 쑤신다. 신체 부분 가운데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손가락 뿐.다른 뼈는 하루종일 요지부동이다."눈이 피로한 것부터 참기 힘든데 언제부턴가 몸까지 더욱 무거워졌다"며 "다른 근육을 사용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퇴근 후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컴퓨터는 이미 신종 산업재해의 주범으로 자리잡았다. 컴퓨터 사용 등 단순반복작업으로 목.어깨.팔부위가 아프고 마비되는 증상인 '경견완장해' 판정을 받고 산재보상을 받은 근로자는 전국적으로 지난해 상반기에만 412명을 기록, 전년도 같은기간의 185명보다 122.7%나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 발생한 경견완장해 환자(412명)만 2000년 전체 경견완장해 산재근로자(394명) 숫자를 웃돌았다. 갈수록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

허리통증으로 인해 재해판정을 받은 근로자도 2000년 한해동안 421명을 기록, 전년도보다 130%나 늘어났다.대구.경북지역에서도 어깨.목.다리.팔.손목 등에 무리한 충격이 오랫동안 가해지면서 발생한 '신체부담작업'환자는 지난 해상반기동안 19명(2000년 8명)이 발생했고 허리에 통증을 호소하는 요통환자는 27명(2000년 5명)이었다.

노동부는 이와 관련, 전국 1천개 사업장에 컴퓨터 질환 예방전담반을 설치.운영하고 예방관리 프로그램 등의 자료를 개발해 보급하는 등 대책을 서두르고 있으나 산재판정을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공단 한 관계자는 "컴퓨터로 인한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선 스크린과 40㎝ 이상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며 "바른자세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며 1, 2시간 작업후에는 단 5분이라도 휴식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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