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만큼 보입니다. 나누어 드린 답사자료를 꼭 읽읍시다".국립대구박물관 동우회의 고적답사 때마다 강조하는 전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본업이 약사인 그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으로 이룬 해박한 지식으로 전국에 산재한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답사한다. 모든 것은 애정을 가지고 보면 나타나지 않는 부분까지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눈을 혜안이라 했던가.
어디 그것이 고적답사에서 뿐만이랴! 인간만사 매한가지였다. 진드기가 내 몸에 붙어 피를 먹고 자라도록 사마귀인 줄로만 알았으니 말이다. 알지 못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당한다.
◈진드기를 사마귀로 착각
거슬러 몇년전 오월이었다. 그 한사람이 주고 떠난 공허한 시간을 위한 선택으로 일가 할매들 모임에 들어갔다. 해마다 오월이면 떠나는 산나물 채취여행의 매력 때문이지만 친정이라는 편안함 역시 좋았다. 선배 나물꾼들이 일러주는 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여 새벽 2시에 약속장소에 합류했다.
차는 어둠속을 신나게 달렸다. 태백산 중턱에 닿았다. 물론 기사도 오랜 단골이라 길을 찾는 시간 허비는 없었다. 산중 아침공기가 무척 차갑다. 점퍼깃을 높이고 모자도 푹 눌러쓴다. 저마다 다른 식단으로 멋진 뷔페가 됐다. 둘러앉아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누군가 준비해온 뜨거운 물 한모금이 추위를 녹인다. 장갑을 끼고 등산화의 끈을 다시 죈다.
서당개 삼년이라고…. 산나물에 대한 기사의 식견도 대단하다. 일흔이 넘은 할매들이 하나없이 앞장을 선다. 전문 나물꾼들을 싣고 온 타이탄이 벌써 몇대 서있다. 다 어느 골짜기로 갔는지 우리 군단(?)만이 아는 숨겨둔 참나물 군락지가 따로 있다며 가파른 산길을 잘도 오른다. 산이 높아 뱀은 없지만 한사람 때문에 애를 먹었던 지난번의 예를 들어 대열을 놓치지 말라고 거듭 당부한다.
산나물꾼이 지켜야할 계율 첫번째가 뿌리를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선배 나물꾼군들의 허리가 연신 굽혀진다. 보자기가 금방 만원이다. 나무에 걸어둔 마대가 배가 부르다.
나는 아직 서서 헤맨다. 그것이 그것같고, 구별이 도무지 되지 않는다. 뭘 알아야 군수를 하지. 백치눈에는 온통 이름모를 잡초들 뿐이다. 물을 때마다 누구든 자상히 가르쳐 주지만 둔재인 나로서는 번번이 실패다.
이번 여행은 산나물 공부 입문에서 끝났지만 주목이 있는 곳에 참나물이 자라고, 참나물과 모싯대가 공생한다는 사실과 두릅이나 더덕, 산도라지도 있다는 계요만으로도 만족했다. 할매들의 집에서 자연생 더덕과 당귀향기가 온 차안에 퍼진다. 한해, 두해 거듭되고 보니 나도 산나물 박사가 되어 간다. 어부들의 만선의 기쁨이 이런 것일까. 알고보면 보이고, 보이면 능률이 오른다더니, 담을 그릇도 없이 과욕을 부렸다.
주고 싶은 이들에게 줄 계획에 부풀어 밤이 늦는 줄도 모르고 콧노래로 샤워를 한다. 이것이 웬 일인가. 가슴에 발그레 실핏줄이 서있었다. 원인을 역추적했다. 지난 홍수로 폐광에서 흘러내린 돌덩이를 피해가는 차 안내를 하다가 넘어졌을 때 생긴 찰과상이라 생각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진리 터득
며칠 후 그 자리에 녹두알만한 사마귀가 돋아나 있었다. 말랑 말랑 만지작거리니 아무감각없이 재미가 났다. 약사친구가 사마귀쯤은 외과에서 간단한 수술로 처리된다고 권한다.
원래 병원을 기피하는 터라 무시하고 지냈다. 열흘째가 되던날 지기 한분을 모시고 아는 한의원에 갈 일이 있었다. 간김에 수술을 청했다.
원장은 사마귀가 아니라 벌레라며 핀셋으로 힘겹게 잡아냈다. 그 자리가 제법 움푹 파였다. 확대경으로 보니 입과 촉수와 여러개의 다리가 달린 벌레였다. 동참했던 동갑나기가 소식을 듣고 귀에 안 들어갔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뻔했다고 했다.
동물의 피를 실컷 빨아먹고는 배설을 못해 배가 터져 죽는 진드기라고 했다. 어이가 없는 사건이지만 덕분에 나는 진드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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