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신광옥 청와대 전 민정수석이 자신의 비리연루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한푼이라도 받았으면 할복하겠다"고 호언하더니 얼마안가 구속됐다.
이번에는 대통령 처조카인 이형택(李亨澤)전 예금보험공사 전무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다"고 장담하던 국회증언이 무색하게 비리 사실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검찰 소환이 불가피하게 됐다.이들의 비리에 대한 조사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형편에 우리로서야 왈가왈부할 수는 없겠지만 어쩐지 지나친 호언장담이 우선 눈에 거슬린다.
어떻게 해서라도 법망을 피하고 싶은 심경에서 해본 소리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보통의 피의자들이 하듯이 "그런 일 없다"고 그냥 잡아 떼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두고 부끄럼이 없다느니 배를 째겠다는 등의 극언으로 결백을 주장한 것과는 애시당초 그 말발이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거물급은 결백을 주장할 때 하늘을 팔고 목숨을 담보로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것일까.
우리 속언에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란 말이 있다. 뒷 배경이 든든한 것을 믿는데서 나온 말이다. 금방 들통날지도 모를 일을 두고 사법고시 출신의 수재인 신광옥씨와 금융계에서 30년간 잔뼈가 굵은 이형택씨가 설마 "배를 가르겠다", "하늘을 두고…" 식의 막말로 맹세를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 이들은 무슨 말을 하든 그 자리만 모면하면 막강한 권력의 힘이 '수양산 그늘'이 돼서 또 감싸줄 것으로 믿고 막말을 내뱉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들은 '해가 지고 나면' 수양산 그늘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몰랐던 것만 같다독일 슈뢰더 총리의 동생인 로타 포셀러가 7개월간의 실업자 생활을 청산하고 관광안내원으로 취직했다 한다.
포셀러는 그동안 청소부로 일하다 놀고 있었는데 이번에 스페인에 일자리를 구해 독일을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외신은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슈뢰더, 포셀러 형제가 우애가 깊다고 전하면서도 "포셀러가 슈뢰더 형님에게 한번도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형이 1998년 총리가 된 뒤에도 포셀러의 생활에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혈연.학연의 공해에 시달려온 우리에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돈의 팔촌이 요직에 앉아도 행여 '수양산 그늘'이 드리워지기를 학수고대 하는 우리 풍토도 이제 고쳐질 때가 됐다.
김찬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