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화란인들의 지혜로움 타산지석으로

입력 2002-01-23 00:00:00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화란의 기적'이란 프로그램을 인상깊게 봤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4선 의원, 합법적인 직업인으로서의 매춘부, 16년간 로테르담 시장 재임 중 4백만원의 공금 유용여부로 사임한 전 내무부 장관, 노사정위원회의 생산적인 회의, 왕실 리셉션 행사에 전철을 타고 참석하는 각료들의 모습 등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서 몇 가지 점을 느꼈다.

무엇보다 '현실 인식' 문제다. 화란인들은 자기 나라가 작은 나라라는 걸 인정한다. 그 대전제 아래 강대국들 틈에서 생존과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조화로운 협동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공유된다.

현실적으로 도저히 근절할 수 없는 매춘을 양성화해서 컨트롤 해나가는 모습도 실용적 '현실인식'관에서 기인한다.

다음으로는 개인주의가 매우 확장돼있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청교도 정신'이다. 바로 이 정신 때문에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 전체를 위한 봉사와 그로부터 얻는 명예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검소한 생활, 청빈한 생활 같은 것도 모두 이러한 배경에서 연유한다.

또한 화란인들은 매우 세계화된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될 유용한 것들은 무엇이든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면서 변화하는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를 개방하고 있다.

그러나 남의 것을 무조건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자기화(自己化) 하고 있다. 화란의 파트 타임 노동제도는 꼭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우리도 이 방식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수가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 경제의 중대한 결함인 경기 사이클에 따른 고용문제의 획기적인 해결책의 실마리도 찾을 수가 있지 않을까.

끝으로 인구문제다. 4만3천km²의 국토에 인구는 1천6백만명으로 인구밀도는 1km²당 370명이다.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인 암스테르담의 인구는 73만명으로서 인구밀도는 1km²당 5,600명(1990년기준)이다. 우리 수도권의 인구밀도(1km²당 2만4천명)와는 대조적이다. 오래 전부터 적극적인 해외이주정책과 균형적인 인구분산정책을 추진해 온 결과다.

오늘날 화란 국민들이 이처럼 경쟁력을 갖추고 균형적인 발전을 하기까지에는 정부의 장기적인 인구정책이 큰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 프로그램은 '화란인들의 지혜로움'으로 귀결된다.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위에 강대국들이 즐비한 험준한 환경에서 작은 나라가 살아 남고 또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잘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무엇보다 배워야 할 것은 잘 살 때나 못 살 때나 시대상황에 관계없이 결코 낙심하거나 자만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면서도 겸손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석조(대구시 국제관계 자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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