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어떤 감상주의

입력 2002-01-22 14:14:00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며 우리네학교 수업 시간도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 암송으로 찬란하고 숙연하게 시작하면? 라는 제안을 한다면 프랑스식은 아니다.

빅토르 위고 탄생 200주년이 되던 날, 프랑스의 전국 초.중.고교가 위고의 작품 암송으로 첫 수업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읽고 잠시나마 이런 류의 생각에 젖었다면 이것도 표절일까? 이 교육적이고 환상적인 아이디어가 프랑스 교육부에서 나왔다는데 우리의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총이나 전교조, 교육시민단체의 고충은 지금 어느 접점에 머물러 있을까?

나라마다 대학진학의 분위기가 다를진대, 인간만이 자원이라는 믿음이 팽배한 우리 나라 상황에서는 그런 감상주의라니! 라며 여전히 항변할 학부모들의 모습은 상상만해도 마음이 아프고 충분히 그럴듯하다.

무릇 입시교육에 시달리다 시달리다 대학에 성공한 선배 학생들도 자기네 후배들에게 입시지옥이라는 전철을 밟게 해서는 안되겠다며 대학당국을 향해 교육부를 향해 입시제도를 바꾸자는 데모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 이것을 학연기득권이라 칭한다면 무례한 얘기가 될까?

도시의 한가운데로 한가운데로 줄 선 현생의 이어질 듯 끊어질 듯한 길 위에서 끌려 다니는 미래를 무서워하며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야 하겠지만 이런 발상의 전환이 학생들의 영혼과 교양에 샘물처럼 스며든다면 성적 향상에 급급하고 딱딱한 학교가 온순한 지혜의 전당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감상적이라고만 보지 말자.

하지만 이글을 우연히 읽던 사람들은 잠시 눈 지그시 감으며 어떤 회한에 젖는 듯 하 겠지만 금세전화를 받거나 다시 멈추었던 일을 시작하면서 "나도 그런 생각 옛날에 많이 했다. 너만 그런 생각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사정이 있는거다"라고 하면 어쩌나 나는 벌써 무안해지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나 또한 이렇게 다시 응답하노니 "생각이란 거 그거 아무리 많이 하면 무엇할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서시(다른 작품이면 또 어떠한가)를 암송하며 수업을 시작하는 학생들의 마음엔 사랑과 민족과 역사라는 어렴풋한 밑그림이 그려져 학생 스스로 이런 결심을 할 것만 같은데. '더욱 더 열심히 살아야지(공부해야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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