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걸 볼 줄 몰랐다. 적어도 그 일에 관해서만은 나는 청맹과니였다. 딱하게도…. 서울살이 사십 년 남짓을 뒤로 젖히고는 고향엘 돌아 왔을 때, 그건 새삼 낯선 것이었다. 아니 어설퍼 보이기조차 했다. 나이 지긋한 아주멈네들 그리고 할머니들의 걸음새라니, '온 세상에 저런 뒤뚱발이가?'
그건 걷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어기적거리고 비트적대면 견디다 못한 길바닥이 뒤로 밀려나 주는 게 아닌가 말이다. 펴지다만 낡은 우산처럼 처질 대로 처진 어깨하며 꼬부라진 허리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 걸음걸이라니! 가슴팍과 배를 내민 채, 팔을 휘저어대면서 그들이 저만큼 오고 있다. 활개치는 게 아니다. 팔이 어깨 죽지에서 덜렁대다 못해 너풀거린다. 그러면서 팔 끝은 벌어질 대로 벌어져서는 여덟 팔(八)자를 그려댄다.
죽자살자 달라붙는 액이며 살들을 내쫓자고 저러는 걸까? 한데, 팔만 그런게 아니다. 다리도 한 몫 거들고 있다.짤록한 하체도 걷는 게 아니다. 차라리 절룩댄다. 영락없는 잘름발이다. 그 여세로 두 발끝은 여덟 팔자를 그려댄다.위 아래, 두 겹으로 여덟 팔자를 그려대는 걸음걸이. 28 청춘을 다시 부르자는 걸까? 88이라서 팔팔한 젊음을 되찾자는 걸까?. 아무려나 곱게 보긴 어려웠다.
'잔생이 보배'라더니, 못난 척하는 걸로 운신하고 또 보신하곤 하던 그 습성 탓일까?하지만 이곳 마을에 눌러 사는 세월이 길어지고 그들 삶에 익어가면서 나의 눈은 조금씩 달라져 갔다. 아니 바른 시력을 회복해 갔다. 거위의 어깨부들에 팔을 달아주면, 저럴까 싶은 그 걸음새, 그 팔자 걸음의 속내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허리 굽히곤 일들을 한다.
심지어는 아예 허리 꺾을 대로 꺾고는 일한다. 부엌일, 절구질, 마루며 방 닦는 일이 모두 그렇다.그래서 꾸부정한 그들은 다시금 또 쪼그리곤 일을 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쪼그랑박이다.
그러기에 그들 일하는 자세는 결국 '꾸부정-쪼그랑'이다. 일하는 몸짓만이 아니라, 아예 세상살이, 살림살이 자체가 그렇다.상 하체를 펴고 사지를 뻗고 할 겨를이 없다. 심지어 잠잘 때도 버릇처럼 웅크린다. 잠이 새우잠이듯이 살기도 새우등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 말도 그저 웅절거림일 뿐이다.
혀가 제대로 펴지질 않고 입술이 오그라들다 보니, 불평도 원망도 미처 소리가 되질 않고 입안에서 맴돌이를 할 뿐이다. 봄, 여름 가을, 세 절기 내내 그들은 쪼그리고는 밭을 맨다.
머리를 땅에다 박다시피 하면 궁둥이가 들린다.그걸 잡아 내리치듯이 그들 발끝은 보다 더 크게 여덟 팔자로 벌어지곤 한다.거의 하루 온종일 그들은 여덟 팔자로 밭고랑 새를 누빈다.
그건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지피는 자세, 마당에서 깨알이나 콩알을 터는 자리개질 그리고 냇가에서 하는 빨래질의 연장이다.그들 삶의 자세 전체가 앉은뱅이의 여덟 팔자다. 그래서 그들 걸음새가 쌍 팔자다.
스스로 짐지고 감당해 온 삶의 무게가 절로절로 팔자 걸음을 치게 하는 것이다. 그건 장중한 몸짓, 거룩한 몸맨두리다. 그걸 처음 알아 차렸을 때, 나는 한길에 나가서 쌍 팔자걸음을 걸어 보았다. 당당하게 그리고 의젓하게…
인제대 문과대 교수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남아공 대통령·호주 총리와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