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의 최대 일간지 알 아흐람 신문사 편집국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광경은 수많은 여기자들의 일하는 모습이었다. 형형색색의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여기자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은 이슬람권 이외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알 아흐람 신문사에서는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여기자들이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 더구나 불어판 알 아흐람 신문의 편집부는 여기자가 70%나 된다고 한 비서가 일러주었다.
대다수 여기자들은 스카프를 쓰고 있었지만 일부 여기자들은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 '반항적인 소수'에 대한 염려와 호기심으로 필자는 머리를 가리지 않은 한 여기자에게 "왜 가리지 않는지, 안 가려도 괜찮은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여기자는 이방인의 '이상스러운' 질문에 당황한듯 "머리를 가리거나 드러내는 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짧은 한마디만 남기고 총총 사라졌다.
카이로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성들의 패션은 편차가 너무나 심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은 '히잡'으로 완전히 가리고 눈만 빠끔 드러낸 여성이 있는가하면 머리만 가린 여성, 머리도 가리지 않고 완전히 서구화된 여성... 가지각색의 모습이다. 그중 머리만 가린 여성들의 모습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하튼 눈만 내놓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집트 최고 지성의 전당인 카이로대학을 찾아갔다. 캠퍼스는 오랜만의 따뜻한 햇살을 즐기려는 수많은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필자의 눈엔 여학생들의 수가 더 많아 보였다. 공대의 교수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공학과 교수들의 상당수가 여성인 점에 또한번 놀랐다.
의료공학을 강의하는 모나 타퍼(여.42) 교수는 "우리과의 30%가 여교수이고, 학생의 40%가 여학생들"이라고 말했다. 타퍼 교수는 또 "문학분야의 경우 거의 90%가 여학생들이고 교수들도 90% 정도가 여성"이라고 덧붙였다. 이슬람국가의 여성으로서 사회나 일터에서 받는 차별은 없는지 물어봤더니 "남녀차별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필자가 사우디에서는 여성은 운전도 할 수 없고 아프간의 탈레반정권은 학교도 못가게 했다고 말하자 "사우디는 극단적인 원리주의 국가이며 탈레반은 이슬람국가도 아니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나왈 하산(여.67) 이슬람문명연구소장은 "분명히 코란에서는 남녀평등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슬람국가마다 여성을 다르게 대우하는 이유는 민족이나 부족의 역사나 전통과 관계있다"면서 남녀차별과 이슬람교와의 관계를 부정했다.
여성파워의 산실인 인문학부로 발길을 돌렸다. 금.토요일이 휴일인 이슬람국가에서는 주말이 목요일이다. 인문학부 건물앞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서 만난 아미나 루치드(55.불문학) 교수. "파리 유학때 송금문제로 은행에 간 적이 있는데 결혼한 여성이 남편과 다른 성(姓)을 갖고 있다며 남편의 허락을 받아오라는 바람에 은행구좌도 만들 수 없었다"며 도리어 서구세계의 남성중심 문화를 비판했다. 이집트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결혼후에도 자신의 성을 지니는 것이 전통으로 돼있다.
카이로대학교를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메리카대학 기숙사 부근에서 순찰을 돌던 정복차림의 여자경찰관과 마주치면서 이집트여성에 대한 고리타분한 선입견을 또다시 깨야했다.
반면 이런 역동적인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이슬람 여성들에게는 아직도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명예살인'이라고 불리는 여성에 대한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인데 유엔 공식자료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만도 1997년에 52명의 여성들이 '명예살인'으로 목숨을 잃었다. 7천만 이집트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시골에서는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심지어 파키스탄에서는 해마다 1천명 이상의 여성들이 '명예살인'으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레바논.팔레스타인.요르단 등에서는 매년 수십명씩, 예멘에서는 약 400명이 희생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가 본 이슬람 여성들, 특히 이집트 여성의 지위는 급속한 사회변화에 따라 이전보다는 크게 향상됐지만 아직도 심각한 남녀불평등이 존재하는 것 역시 분명한듯 했다.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이집트 사회지도층 여성들은 너무나 '애국적'이어서 이집트의 어두운 현실을 이방인에게 감추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여성의 현실을 공개하고 비판하기를 꺼리는 분위기 자체가 여성의 지위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영식(자유기고가) youngsig@otenet.gr